내로라하는 의원도 못고친 가려움, 씻은 듯 나았다
고려시대 최고 문장가 이규보의 詩
해수로 완쾌·의원 고발 상세 기록
고려시대 최고 문장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규보(1168~1241)는 만년에 피부병을 호되게 앓았다. 4개월 넘게 고생하는 동안 용하다는 의사들을 찾아 처방을 구했지만 죄다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저잣거리에서 오가는 얘기를 들었다. 강화의 바닷물이 특효약이라는 거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강화 주민들이 말하는 그 바닷물 목욕을 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렇게도 괴롭히던 피부병이 강화 바닷물 목욕 몇 번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800년 전, 이규보가 남긴 글에 강화의 바닷물로 그의 피부병을 치료한 과정이 상세히 나와 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그의 2천여 편이 넘는 시(詩) 중 ‘병을 치료하는 시(理病詩)’가 있다. 이규보의 피부병 치료 일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증세와 치료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병을 치료하는 시’는 1237년, 고려가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뒤 5년이 지났을 때인 그해 가을 8월30일부터 130여 일 동안의 치료 기록이다. 강화 바닷물은 어떻게 하여, 유명 의사들도 어쩌지를 못한 이규보의 피부병을 치료했던 것일까. ‘병을 치료하는 시’ 속으로 들어가 보자.
몸에 갑자기 붉은 소름 같은 게 돋았다. 피부병인 단독(丹毒) 같은데 단독은 아니었고, 옴 같은데 옴도 아니었다.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긁으면 시원했지만 곧바로 저리고 통증이 두 배로 찾아왔다.
통증이 가시면 굳은 모래알처럼 변했다. 다시금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 뒤따랐다. 또 긁어야 했다. 진물이 나고 두드러기가 온몸으로 번져 두꺼비 등과 다를 바 없이 되었다. 의사들을 찾아다녔지만 그들의 처방은 효험이 없었다.
도리 없이 포기할 지경에 처했을 때, 항간에 떠도는 속언을 들었다. 바다에서 소금물(鹹水)을 가져다 씻으라는 얘기였다. 한 번 목욕하니 가려움이 금방 가셨고, 두 번 씻으니 몸이 깨끗하고 편안해졌다.
이규보는 이렇게 강화의 바닷물에 고마워했다. 4개월 넘도록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그동안 헛처방을 내린 의사들을 그는 시를 통해 고발했다.
단독은 요새도 등장하는 한의학 용어로, 세균에 감염돼 붉게 붓는 전염성 피부질환이다. 옴 역시 전염성 피부병인데, 몹시 가렵고 피부를 헐게 한다. 단독이나 옴의 증상은 고려시대나 요즘이나 큰 차이는 없을 듯 싶은데, 이규보가 앓은 피부병이 이와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규보는 해수(海水)라 쓰지 않고 굳이 함수(鹹水)라 적었다. 그러면 이규보의 피부병을 낫게 한 강화도의 바다에서 가져온 소금물, 함수는 과연 무엇인가. 함수는 일반 바닷물과는 확연히 다르다. 바다에 나가 그냥 퍼 온 해수(海水)가 아니라는 얘기다.
고려시대 인천을 비롯한 서해안에서는 바닷물을 끓여 소금 결정을 얻었다. 이를 자염(煮鹽)이라고 한다. 물을 끓이기 전, 염도를 한껏 높인 걸 함수라고 한다. 여러 차례의 과정을 거친 아주 짠 상태의 바닷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짜디짠 강화의 바닷물이 이규보의 살갗에 번진 피부병 원인균을 살균함으로써 나은 게 아닌가 싶다.
소금을 만들기 위해 바닷물에서 얻는 함수는 빼어난 살균 효과를 보였을 것임은 자명한데, 이런 사실을 개성에서 옮겨온 의사들은 잘 알지 못했을 터이다. 하지만, 강화에서 살던 원주민들은 강화의 함수가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는 점을 오래전부터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당시의 함수는 오늘날로 치면 해수탕의 원재료쯤으로 생각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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