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서 반려자 만나 결혼한 내 친구
한때는 패션리더였지만 검소해져
지루한 생활 불평하길래 “데려가줘”
미용실 불만 커질수록 마음에 들어
경쟁하지 않고 있는그대로 살고파
친구가 파리에 산다. 중학교 동창인데, 유학한 이국에서 반려자를 만나 결혼했다. 여름마다 가족과 함께 고국으로 휴가를 와서 파리 생활을 들려준다. 친구에게서 파리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깜짝 놀란다. 내가 상상한 파리와 너무 달라서.
파리는 예술과 패션의 도시 아닌가? 언젠가 멋스럽게 차려입었을 때 파리지앵 같다는 칭찬을 듣고 우쭐해진 적이 있었다. 이십 대에 내 영웅은 고흐였다. 고흐가 그린,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하고 뜨거운 세계를 사랑했고, 고흐가 사는 도시라서 또 파리가 좋았다.
그런데 친구의 파리는 내 상상 속 파리와 달랐다. 한국에 살 때 빨간 바바리코트를 입었던 패션리더는 귀밑까지 오는 염색하지 않은 단발머리에 검소한 옷차림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유명한 맛집에 가자고 하면 김밥천국도 괜찮다고 한다. 친구의 SNS를 통해 본 파리의 식탁은 소박하기만 하다. 한국에 올 때마다 선물해주는 일상용품들도 마찬가지다. 세련되지도 화려하지 않다. 파리에서 온 과자의 맛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집에 오실 때마다 사다주셨던 사십여년 전의 것을 닮았다. 눈에 띄기 위한 과잉 포장 없이 그저 쓰임새에 충실하다. 그런데 정말 파리의 식탁이, 파리의 패션이, 파리의 음식이 소박한 걸까? 그 반대다. 파리는 그냥 파리고, 한국의 식탁이, 한국의 패션이, 한국의 음식이 화려해졌다.
친구와 서울의 호프집에서 술을 마셨다. “이 시간이면 파리의 상점들은 이미 문을 닫은 뒤야.” 친구는 파리생활이 지루하다고 했다. 밤에도 환하고 시끌벅적한 한국을 동경하며 평화롭고 고요한 삶을 불평하길래, 나는 조용히 반박했다. “나도 파리로 데려가줘!”
파리로 돌아가기 하루 전, 친구는 미용실을 찾았다. 역시 한국 미용사의 실력을 따라잡을 수 없다며 파리의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기 싫다고 했다. 궁금했다. “파리 미용사들은 머리카락을 못 잘라?” 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실력이 영 아니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서비스가 불친절하다고 투덜거렸다. 손님을 맞이하는 서비스 마인드 같은 게 없다는 것이다. “네가 필요한 것을 내가 준다는 식이라니까.” 친구의 불만이 커질수록 나는 파리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파리에서 머리를 손질하는 게 싫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는 파리의 미용사가 되고 싶어졌다!
파리에서 미용실을 차리고 싶다. 턱을 살짝 치켜들고, ‘내가 널 도와줄게’하는 거만한 태도로 손님을 맞고 싶다. 스스로를 들볶고 훈련시켜 최고의 실력을 뽐내기보다, 머리카락을 비뚤게 잘라놓고도 “뭐 그럴 수 있죠. 저도 태어날 때부터 미용사였던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직접 자른 것보다는 낫지 않아요?” 뻔뻔하게 대꾸하며 미안하다는 말 대신 웃어버리고 싶다. 경쟁하지 않고,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이런 시절 어른들이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을 때마다, “되고 싶은 게 없다”는 말 대신 다른 친구들의 대답을 흉내낸 거짓말을 했었다. “선생님이요.” “의사요.” “간호사요.” “건축가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누군가 장래희망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제 꿈은 파리의 미용사예요. 그냥 미용사는 아니고, 한국의 미용사는 더더욱 아니고요. 손님이 만족하지 못할 정도로 실력이 부족한, 솜씨가 그저 그런 파리의 미용사가 되고 싶어요.”
미용실은 크지 않고, 좌석은 하나면 충분하다.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커피 대신 은은한 향의 차를 내놓고 싶다. 예약은 받지 않고, 기다릴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돌아가라고 해야지. 손님들은 한숨을 쉬며 문을 닫고 나간다. “오늘도야? 뭐 어쩔 수 없죠. 내일 다시 올게요.” 나는 손님을 향해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 것이다. “어쩌면 내일도 퍼머를 못하실 지도 몰라요. 근데, 그러면 어때요? 조금 느려도, 조금 못해도, 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니까요.”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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