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머무는 외국인 인식 여전하다… 누가 한국인인가

 

장기 미등록 아동 3천명 체류허가

유학생 분류… 창업활동 등 불가능

 

문화 이해도·정착 가능성 등 평가

사회적 합의 이끌 방향 찾아봐야

‘자국’ 없는 아이들, 자격을 묻다

‘자국’ 없는 아이들, 자격을 묻다

오산을 떠나지 못하는 우진. 휴학 한 번 할 수 없는 블레싱. 이들은 한국 사회에 묻는다. ‘우리는 한국인이 아닌가?’
https://www.kyeongin.com/indepth/S04001150
경인일보 ‘자국 없는 아이들, 자격을 묻다’ 보도 이달의기자상 수상

경인일보 ‘자국 없는 아이들, 자격을 묻다’ 보도 이달의기자상 수상

경인일보 사회부 목은수·정치부 이영지 기자가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을 수상했다. 한국기자협회(회장·박종현)가 주관하는 한국기자상 심사위원회(위원장·이민규 중앙대 교수)는 23일 제421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으로 경인일보의 <‘자
https://www.kyeongin.com/article/1753897
블레싱(토고·22)이 동두천의 집 근처 카페에서 전공책을 읽고 있다. 2025.8.30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블레싱(토고·22)이 동두천의 집 근처 카페에서 전공책을 읽고 있다. 2025.8.30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국내에서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을 포함해 3천여명이 체류자격을 부여받으면서, 이들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44명이 체류를 포기하고 출국했다.

목적에 따라 체류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가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겐 또 하나의 구조적 제약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2021년 4월부터 2025년 7월까지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1천539명이 체류자격(D-4 등)을 부여받았다. 부모 등 양육자(1천774명)를 포함하면 총 3천313명이 법무부의 구제대책을 통해 체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법무부는 2021년 국내에서 성장한 미등록 이주아동을 대상으로 한시적 구제제도를 시행했다. 이어 올해 3월에는 이를 2028년 3월 31일까지 3년 연장했다. 기존에는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에 한정됐던 이 제도는 구직(D-10)이나 취업(E-7-Y) 비자까지 확대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동 12명과 부모 등 양육자 32명, 총 44명이 자발적으로 출국해 한국 체류를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한국사회가 이들을 여전히 ‘일시적으로 머무는 외국인’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대학에 진학해도 ‘유학생’으로 분류되고, 사업장에 소속된 형태로 일해야 하는 탓에 프리랜서, 창업, 예술인 활동 등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살 때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입국해 지금까지 동두천에서 살고 있는 블레싱(토고·22·사회학 전공)은 중앙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토고 국적의 부모님과 한국에서 살다 보니 자연히 ‘문화’가 사람들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게 대학교에 진학해 (문화)사회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다행히 고등학교 3학년 때 구제제도가 시행되면서 대학 진학의 길이 열렸다.

하지만 블레싱이 받은 비자는 ‘유학생(D-2)’이었다. 이는 ‘공부를 위해 잠시 머무는 외국인’이라는 뜻이다. 이로 인해 약 100만~150만 명의 대학생이 소득 수준에 따라 지급받는 국가장학금 대상에서 제외됐고, 해당 장학금을 기반으로 한 교내·외 근로 기회나 학자금 대출도 받을 수 없었다. 수소문해 받은 외부 장학금은 대부분 높은 성적 기준을 요구했다.

블레싱(토고·22)이 동두천의 집 근처 카페에서 전공책을 읽고 있다. 2025.8.30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블레싱(토고·22)이 동두천의 집 근처 카페에서 전공책을 읽고 있다. 2025.8.30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블레싱은 “성적 압박을 받는데 휴학도 불가능하니까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했다. 이어 “교양수업만 신청해도 ‘유학생’이라는 이유로 왜 신청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대학교에서도 ‘지금 한국에 온 외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매번 설명해야 한다”며 “한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다 보니 방황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우진이(가명)의 경우는 국적이 아예 없는 ‘무국적자’ 상태다. 네팔 대사관을 통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그는 올해 3월 구제대책으로 비자를 받았지만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제주도나 해외로의 여행조차 불가능하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선 한국 국적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귀화의 문턱은 높다. 결국, 단순히 체류를 허가하는 수준을 넘어, 장기체류 이주아동이 국적까지 취득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한계가 한국의 외국인 제도가 따르는 ‘혈통주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창호 한양대학교 글로벌다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한국은 속인주의 성향이 강해 ‘한국인의 혈통이 섞였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재외동포를 위한 별도의 비자 체계가 있고, 장기체류나 체류자격 변경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라며 “(하지만 그런 사람들보다) 우리 지역사회에서 나고 자란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더 (한국 사회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점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문화 이해도와 정착 가능성을 기준으로 하는 평가 제도를 도입해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은진(Keish Kim) 미국 럿거스대 영문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어를 배우며 이 사회에 녹아든 이들을 여전히 ‘미등록자’로 분류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은 오랜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 국가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이제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라며 “특히 인구가 줄어든 지역들에서는 이미 이주민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목은수·이영지기자 wo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