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 연합국의 일원인 중국은 1945년 일본이 미주리함에서 공식 항복 문서를 바친 다음 날인 9월 3일을 전승절로 기념한다. 장제스의 국민당이 정한 기념일이라 무시했던 걸, 시진핑이 2014년 복원했다.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자신감으로 대일 전승국이 본토의 중국이라 선언한 것이다.

낯선 중국 전승절이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참석으로 우리 뇌리에 박혔다. 2014년 시 주석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자 정부는 중국을 북핵 해결의 돌파구로 봤다. 미국의 경고와 국내 보수진영의 우려에도 대통령이 70주년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배경이다. 대규모 중국군 열병식이 거행된 천안문 광장 사열대에서 한·중·러 정상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최룡해 북한 대표는 사열대 끄트머리에 서있다가 행사 직후 바로 귀국했다.

전승절 80주년을 앞두고 중국이 또 한번 초대형 외교 이벤트를 벌인다. 이번엔 북한 김정은이 특급 귀빈이다. 2023 북-러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러시아에 병력을 지원하고 무기고를 개방했고 러시아는 군사기술을 전수했다. 다음해 평양에서 양국 정상이 1996년 폐기된 동맹 조약을 복원했다. 그만큼 북한과 중국은 멀어졌다. 중국을 달래려 김정은이 전승절 기념식을 향해 1호 열차에 올랐다. 유례가 거의 없는 북한 지도자의 다자외교 참석이다. 북-중-러 삼각동맹의 시발점이 될지 전세계가 주목한다.

박근혜의 70주년 전승절 참석은 파국으로 끝났다. 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발사를 방관하자, 한국은 미국과 사드 배치에 합의했고, 중국은 한한령(限韓令)을 발령했다. 80주년 전승절과 열병식의 중심은 북·중·러 정상들이 차지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대신 참석하는 우원식 국회의장은 찾아보기 힘들 수 있다.

중국의 전승절 북·중·러 외교에 앞서 한·미·일 정상외교가 있었다. 중국은 “안미경중 유지가 힘들다”는 이 대통령의 미국 발언에 잔뜩 기분이 상했다. 10월 말 경주APEC에 시 주석이 참석하면 이를 해명해야 한다. 트럼프까지 참석하면 대통령의 다자외교는 더욱 고단해진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트럼프가 2019년처럼 김정은을 만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검찰개혁, 영수회담 등 진영 내외부 갈등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국운이 걸린 다자외교에 집중하도록 정치가 대통령을 놓아주어야 할 국제정세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