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떠나지 못하는 中1 우진이

 

비자 없이 체류중인 미샤씨 아들

미등록 이주아동은 외국인 규정

출입국사무소 단속에 걸릴까봐

학교~공부방~집 오가는 게 전부

비행기 타고 제주도 여행이 소원

‘자국’ 없는 아이들, 자격을 묻다

‘자국’ 없는 아이들, 자격을 묻다

오산을 떠나지 못하는 우진. 휴학 한 번 할 수 없는 블레싱. 이들은 한국 사회에 묻는다. ‘우리는 한국인이 아닌가?’
https://www.kyeongin.com/indepth/S04001150
경인일보 ‘자국 없는 아이들, 자격을 묻다’ 보도 이달의기자상 수상

경인일보 ‘자국 없는 아이들, 자격을 묻다’ 보도 이달의기자상 수상

경인일보 사회부 목은수·정치부 이영지 기자가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을 수상했다. 한국기자협회(회장·박종현)가 주관하는 한국기자상 심사위원회(위원장·이민규 중앙대 교수)는 23일 제421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으로 경인일보의 <‘자
https://www.kyeongin.com/article/1753897
미샤(29·네팔)씨가 우진이의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보낸 ‘우진이의 휴대폰이 없어 비상 연락에 어려움이 있다. 빠르게 개설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안내 문자를 보고 있다. 2025.8.30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미샤(29·네팔)씨가 우진이의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보낸 ‘우진이의 휴대폰이 없어 비상 연락에 어려움이 있다. 빠르게 개설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안내 문자를 보고 있다. 2025.8.30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오산을 떠나지 못하는 우진.

휴학 한 번 할 수 없는 블레싱.

미등록이 드러날까 외국인이라는 걸 친구들에게 숨기는 누리.

그리고 비자를 받기 위해 향한 타지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태완.

이들은 한국 사회에 묻는다. ‘우리는 한국인이 아닌가?’

이은혜(몽골명 엥흐자르갈)씨가 아들 강태완(32·몽골)씨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강씨는 거주비자를 얻기 위해 전북 김제의 한 특장차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졌다.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이은혜(몽골명 엥흐자르갈)씨가 아들 강태완(32·몽골)씨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강씨는 거주비자를 얻기 위해 전북 김제의 한 특장차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졌다.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지난해 11월 전북 김제의 한 특장차 제조업체에서 강태완(32·몽골)씨가 산업재해로 숨졌다. 다섯 살때 엄마를 따라 외국에서 한국에 온 태완씨는 군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20여년을 한국에서 살았음에도 그가 홀로 낯선 지역으로 떠난 이유는 ‘거주비자’를 얻기 위함이었다. ‘한국’을 ‘모국’이라 여긴 그는 한국에서 살기 위해 인구소멸 지역 거주를 조건으로 한 비자를 택했고, 그곳에서 8개월 만에 목숨을 잃었다.

태완씨 같은 장기간 한국에 머물며 자란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 체류자격을 받을 수 있게 된 건 불과 4년 전인 2021년 일이다. 그전까지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한국에서 보내며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함에도 이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방법은 전무했다.

강태완(32·몽골)씨의 엄마 이은혜(몽골명 엥흐자르갈)씨가 장례식장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강씨는 거주비자를 얻기 위해 전북 김제의 한 특장차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졌다.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강태완(32·몽골)씨의 엄마 이은혜(몽골명 엥흐자르갈)씨가 장례식장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강씨는 거주비자를 얻기 위해 전북 김제의 한 특장차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졌다.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정부는 이들을 위한 임시 구제 제도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한국은 이들을 잠시 머무는 ‘외국인’으로만 규정한다. 공공에서 이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조차 출입국관리법 위반 통보 의무에 가로막혀, 이들을 더욱 숨게 만든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2012년부터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을 위한 ‘다카’(DACA, 추방유예제도)를 시행했다. 이 제도는 추방을 유예하고, 사회보장제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이들이 미국 경제를 받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게 했다. 누적 83만명에 달하는 다카 수혜자들은 DACA를 발판 삼아 ‘미국인’으로서의 삶을 꿈꾸고 있다.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미등록 이주아동 현황과 정책 대안을 5차례에 걸쳐 짚는다.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돼.”

미샤(29·네팔·가명)가 아들 우진(14·가명)이에게 항시 당부하던 말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오산시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우진이는 미등록 이주아동이다. 비자 없이 한국에 체류 중인 미샤가 낳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샤는 자라나는 우진이에게 누누이 말했다. “너는 언제든 (출입국에)잡혀갈 수 있으니 절대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

하지만 어린 우진이는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예고도 없이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가 2~3시간씩 사라지곤 했다. 그럴 때면 미샤는 우진이를 찾기 위해 울면서 동네를 헤매곤 했다. 외국인등록증이 없는 우진이는 휴대폰 개통도 할 수 없어, 유심이 없는 기기만 들고 다녔다. 전화번호가 없다 보니 통화도 불가능했다.

미샤(29·네팔)씨의 아들 우진의 어릴적 사진이 네팔 국기와 함께 진열되어 있다. 2025.8.30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미샤(29·네팔)씨의 아들 우진의 어릴적 사진이 네팔 국기와 함께 진열되어 있다. 2025.8.30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그런 우진이가 스스로 활동 반경을 좁히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여행으로 찾은 ‘대전역’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네팔 국적의 삼촌이 출입국사무소로 단속에 붙잡혀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 후였다. 그 삼촌은 미샤가 네팔에 살 때부터 알고 지낸, 우진이에게도 어릴 때부터 다정하게 대해주던 가족 같은 존재였다.

미샤는 “대전에 사는 삼촌과 놀다가, 우리는 오산으로, 삼촌은 서울로 가려고 했는데 그 길에 단속에 걸렸다. 나는 화장실에 있어서, 우진이 혼자 그 장면을 봤다”고 했다. 이어 “그날 이후 우진이는 가까운 수원을 가자고 해도 거부하기 시작했다. 학교와 공부방, 집만 오가고 있다”고 했다. 공부방은 집에서 도보 오분 거리, 우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과 같은 건물에 있다.

미샤(29·네팔)씨의 아들 우진의 어릴 적 핸드프린팅. 복주머니와 함께 집에 장식되어 있다. 2025.8.30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미샤(29·네팔)씨의 아들 우진의 어릴 적 핸드프린팅. 복주머니와 함께 집에 장식되어 있다. 2025.8.30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2011년 네팔에서 결혼이민비자(F-6)를 받고 한국 입국을 앞뒀던 미샤는 네팔 국적의 전 남자친구 사이에서 우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괜찮으니 한국으로 들어오라던 남편과 시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폭력을 행사했다. 집에서 도망쳐 나와 네팔로 돌아가고자 찾은 대사관에서 미샤는 ‘친부가 없는 아이는 두고 가야 한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결국 교회가 운영하는 한 보육원에 아이를 맡긴 뒤, 미샤는 다시 한국을 떠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을 접고 다시 보육원을 찾아 우진이를 데리고 나왔다. 이후 오산의 한 이주여성 쉼터에 입소한 뒤 쉼터 관리 업무를 도맡으며 홀로 우진이를 키워냈다.

“우진이랑 제주도에 가고싶어요.” 한국에서 태어난 우진이는 아직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다. 제주도 여행, 그리고 할머니와 삼촌들이 있는 네팔에 함께 가는 게 미샤의 꿈이다.

※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목은수·이영지기자 wo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