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올리버 트위스트 읽었다”
李, 국무회의 산재예방 논의중 발언
산업혁명기 英사회 참상 그린 소설
기업 구조 핵심 짚는 등 적잖이 놀라
꺾이지 않는 선한 의지 교훈 ‘권장’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올리버 트위스트를 언급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적잖이 놀랐다. 이 나라에서 직위가 가장 높은 이들이 국정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이름이 등장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았더니 사실이었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김영훈 노동부 장관과의 대화 중에 나왔다.
“제가 어릴 때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어릴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서 알고 보니까 그게 소년 노동의 잔혹함을 풍자한 책이었어요.”
이어서 이 대통령은 노동자 사망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했는데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에 관한 기준을 법률로 정해놓았는데도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비용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핵심이었다. 기업이 사고예방에 비용을 들이기보다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이익이기 때문에 사고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사고가 일어날 경우 더 큰 비용 손실이 발생하도록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아울러 대통령이 장관에게 현장을 철저하게 단속하라고 강조하자 김영훈 장관이 “직을 걸겠다”고 대답했다. 국무회의에서 이런 대화가 오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뿐더러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국무회의가 진행된 80분 내내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대통령과 장관의 대화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는 사실이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산업혁명기 영국 사회의 참상을 그린 찰스 디킨스의 소설로, 책으로든 영화로든 많이들 접했을 명작이다. 주인공 올리버는 구빈원에서 태어난 고아로 어머니는 그를 낳다 숨졌고 아버지는 누군지 모른다.
하루는 구빈원에 있는 아이들이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제비뽑기로 원장에게 먹을 것을 더 달라고 요구할 아이를 결정하는데 올리버가 지목된다. 이윽고 식사 시간이 되었고 아이들이 죽을 다 먹은 것을 본 올리버는 원장에게 가서 이렇게 말한다. “죽 좀 더 주세요.” 디킨스는 이 대목을 서술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당신이 그 처지가 되어보라. 다른 말을 할 수 없을 테니.”
하지만 결과는 예상보다 나빴다. 올리버는 호된 꾸지람과 함께 매질을 당하고 독방에 갇혔다가 급기야 쫓겨날 처지가 되고 만다. 구빈원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그만큼 죽음과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구빈원 관계자들의 말처럼 구빈원 안에서는 천천히 죽지만 밖에서는 빨리 죽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원장은 올리버를 데려가는 자에게 5파운드를 주겠다는 벽보를 붙였고 마침 밀린 집세 5파운드가 필요했던 굴뚝 청소원 갬필드가 벽보를 읽고 올리버를 데려가려고 한다. 만약 올리버가 그에게 끌려가 굴뚝 청소를 하게 되었다면 소설은 단편으로 끝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널리 알려진 대로 당시 굴뚝 청소를 맡은 아이들은 굴뚝에 끼어 죽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올리버는 인정 넘치는 치안 판사의 제동으로 끌려가는 처지를 면하고 이후의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도 본래의 착한 심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마침내 행복을 찾는다.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범죄자들이거나 하류층인 만큼 이 이야기는 더럽고 어두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가장 추하고 불쾌한 이야기에서 가장 깨끗하고 선한 교훈이 얻어질 수 있다. 디킨스는 그런 사실을 소년 올리버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대통령이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은 적이 있고 수십 년이 지나도록 그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은 책의 독자가 누구여야 하는지 말해준다. 예나 지금이나 현실의 올리버 트위스트들은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기 어렵다. 누구라도 그런 처지가 되고 보면 책을 읽을 여유가 없기 십상일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 책을 읽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직시하고, 굴절되지 않는 선한 의지로 세상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한다. 모든 이가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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