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추방유예제도(DACA)’ 13년

LA 애니메이션 작가 정은수씨

 

대학 졸업 때까지 미등록 이주 아동

찡그리고 불만 가득한 캐릭터 표현

사회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 묻어나

고민 해결되니 작품세계도 달라져

“신분은 일부일 뿐” DACA가 준 것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서 만난 정은수 애니메이션 작가가 자전적 캐릭터 ‘Koreangry’가 담긴 잡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5.7.9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서 만난 정은수 애니메이션 작가가 자전적 캐릭터 ‘Koreangry’가 담긴 잡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5.7.9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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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어요.”

지난 7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애니메이션 작가(컬러디자이너) 정은수(대한민국·37)씨는 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추방유예제도)를 받은 후 가장 큰 변화로 ‘일할 수 있게 된 것’을 꼽았다. 산호세주립대학(SJSU) 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뒤 애니메이션 방송채널에서 인턴 과정을 밟던 2012년, DACA를 받으면서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12살 때 미국 시민권을 지닌 샌프란시스코의 할머니 집으로 이주한 은수씨는 대학 졸업 때까지는 미등록 이주 아동(Undocumented Children) 신분이었다.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며 여러 대학으로부터 입학 제안을 받았지만, 사립대학은 입학 자체가 불가능했다. 언제든 미국 이민세관집행국(ICE)에 의해 추방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컸다. 그가 만든 만화 캐릭터 ‘Koreangry’의 찡그린 눈썹과 불만 가득한 표정에는 이런 두려움과 미국 사회에 대한 분노가 투영돼 있다.

DACA를 통해 신분 증명이 가능해지면서 프리랜서로도 활동할 수 있게 됐다. 애니메이션 작업 특성상 프로젝트 단위로 팀을 구성해 일하고, 이후에는 잠시 쉬는 방식으로 10여 년 동안 커리어를 쌓았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수입을 얻게 된 것도 DACA 덕분이었지만, 그는 무엇보다 ‘실력으로 인정받는 경험’을 통해 신분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은수씨는 “반복되는 프로젝트를 통해 실력으로 자격을 갖췄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미등록 상태라는 신분은 나를 설명하는 일부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일을 하는 동안은 이민자라는 정체성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정은수 애니메이션 작가의 자전적 캐릭터 ‘Koreangry’가 담긴 잡지. /정은수씨 제공
정은수 애니메이션 작가의 자전적 캐릭터 ‘Koreangry’가 담긴 잡지. /정은수씨 제공

2017년부터 발간한 자전적 만화 잡지에서도 그의 변화가 드러난다. 초반에는 ‘동양인 여성으로서 느끼는 분노’를 중심으로 개인의 감정을 풀어냈지만, 14호까지 이어지며 점차 다른 한인들의 이야기, 해외 입양아 문제, 한국 문화 소개 등으로 소재가 확장됐다. 신분 문제에서 한 걸음 물러나자, 자신의 경험을 넘어 더 넓은 세상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서류(paper)는 단지 사회적 상황일 뿐이고, 그게 너를 정의하지 않는다.” DACA가 가르쳐준 것이라고 은수씨는 힘줘 말했다.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목은수·이영지기자 wo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