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노후 생존 갈림길… 미래먹거리 창출, 자생력 키워야”
올해 착공 40주년, 60세이상 대표자 36.8%로 10년새 2배 넘게 늘어
대기업 의존 부품 협력업체 많아 한국지엠 철수 등 미리 대비해야
SPC 설립 미래산업 연구·개발 ‘돈 아닌 기술 상속’ 초석 만들고파
1985년 착공해 1992년 준공된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 약 957만4천㎡로 인천 산업단지 중 최대 규모인 이 곳에는 인천지역 제조업체의 80% 이상, 8천여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남동산단은 인천 제조업의 중추로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에 크게 기여했다. 착공 40년이 지난 지금 남동산단은 노후시설과 부족한 편의시설, 한국 제조업 경쟁력 약화 등으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변화와 혁신의 기로에 서 있는 남동산단. 남동산단의 역사를 기억하는 산 증인이자 남동산단 기업인들의 중심에 있는 (사)남동국가산업단지경영자협의회(남동경협) 이율기 회장을 만나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남동산단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율기 회장이 남동산단에 처음 발을 들인 건 지난 1998년이었다. 대우중공업 퇴직 후 굴삭기 등 중장비 부품 개발 업체로 사업을 시작한 이 회장은 공장 입지를 물색하던 중 남동산단을 선택했다.
이 회장은 당시 남동산단을 선택한 이유로 “수도권 산단 가운데 가장 깨끗하고 활기가 넘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동산단에 가면 안 되는 게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남동산단은 희망이 가득했던 곳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이 회장은 “수출과 납품을 맞춰야해 밤 늦게까지 공장 불이 꺼지지 않았고, 아침저녁 출퇴근길은 물론이고 거리에 일자리를 찾아온 젊은이가 가득했다”며 “공장들이 주말에도 특근을 하며 24시간 내내 가동됐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남동산단은 1980년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와 기업을 분산시키기 위해 조성됐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약 20년간 ‘수출전진기지’로서 제조업의 부흥을 일으켰고, 대한민국 산업과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이었다.
그러나 남동산단도 세월의 역풍을 피해가지 못했다. 남동산단이 올해로 착공 40주년을 맞는 동안 산단에 입주한 기업과 기업인들 모두가 함께 나이를 먹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2023년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제조업의 60세 이상 대표자 비율은 2013년 15.9%에서 2023년 36.8%로 10년 새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 회장은 남동산단 내 기업의 노후화와 직원들의 고령화 등이 산단의 쇠퇴를 이끄는 주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이 회장은 “기업의 평균 수명은 30년이라는 통계나 보고서가 많다. 30년이 지나면 생존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라며 “30년이 지난 남동산단과 산단 내 기업들이 생존 기로에 섰다”라고 말했다. “이 시기를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와 전환이 필요하지만 기업인들 대부분 고령의 나이에 접어들며 의지가 많이 약해졌다”며 “남동산단이 쇠퇴로 가는 원인 중 하나”라고 했다.
이 회장은 남동산단의 생존을 위해 ‘자율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동산단은 완제품 생산보다 부품을 만들어 원청업체에 공급하는 협력업체가 많다. 원청업체가 경기 침체로 생산을 줄이면 남동산단이 곧바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남동산단에 밀집한 협력업체들은 한국지엠과 현대제철 등 인천의 주요 대기업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 대기업은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와 내수경기 침체 등으로 최근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회장은 “남동산단이 발전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소규모 협력업체가 많기 때문”이라며 “원청업체의 물량이 없다면 남동산단 내 협력업체들은 자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지엠은 2027년 이후 철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고, 인천의 다른 원청기업도 평생 존재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남동산단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남동산단 기업인들과 SPC(특수목적법인·Special Purpose Company)를 설립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남동산단 1세대 기업인들을 모아 투자를 받아 SPC를 설립해 미래산업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2세대 기업인들에게 물려주자는 게 이 회장의 아이디어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인천에 대기업을 유치해야 하청업체들이 살아남을 테지만, 이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때문에 쉽지 않다”며 “남동산단 기업들이 협동해야만 한다. 1세대 기업인들이 돈이 아닌 기술을, 미래먹거리를 상속해 남동산단 생태계 전환을 이끌 수 있도록 초석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남동산단 기업인들의 친목 강화와 정보교류 등을 목적으로 1991년 출범한 남동경협은 올해 34주년을 맞았다. 남동경협은 그간 기업인들간 소통에 초점을 두고 활동을 해왔다. 이 회장은 남동경협에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과거 남동산단의 호황기에는 기업간 소통과 친목이 산단 발전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됐지만, 지금은 소통만으로는 큰 변화를 이끌 수 없다”며 “남동산단이 새로운 기술을 선점하고 전환기를 무사히 거칠 수 있도록 돕는 게 제 소임이다. 남동산단의 새로운 꿈을 위해 남은 임기 동안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율기 회장은?
▲1984년 건국대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졸업
▲1984~1993년 대우중공업(주) 중앙연구소 재직
▲1993년~현재 코멕스전자(주) 설립·대표이사
▲2005년~현재 한국건설기계협회 이사
▲2024년~현재 (사)남동국가산업단지 경영자협의회 회장
/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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