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역사의 터널 표류할 뻔했던 민주주의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정치는 대치·갈등

거대 양당의 강성 당원만 의식하는 정치

통합과 협치 바라는 중도층 민심에 역행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

한국 정당체계가 민주화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은 엘리트 위주의 정당이었느냐의 여부다. 포괄적 측면에서 볼 때 민주화 이전의 정당이 정치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명사정당이었다면 민주화 이후 정당은 대중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는 본격적인 대중정당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정당체계는 여전히 일반 대중의 이해보다는 엘리트의 이해관계에 유리한 구도다. 이른바 ‘편향성의 동원’을 제도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편향성의 동원은 특정 갈등을 제어하기 위해 다른 형태의 갈등을 동원하는 것이다. 예컨대 계급대립을 은폐하기 위해 지역갈등을 부각시키고, 정당이 대중의 이익을 대표하기 보다 정당에 속한 자들의 이해관계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선거승리를 위해 ‘편향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정당 간 갈등과 대립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이에 편승하는 정치엘리트들이 이를 동원하고 조작하려는 강한 유혹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 지금 정당체계의 특징이다.

국민의힘의 새 지도부가 들어섰지만 이미 1차 투표에서 탄핵 반대를 적극적으로 표방했던 후보들이 약진했다. 결선투표에서는 비록 전략적 선택이었겠지만 친한동훈계와의 통합을 호소했던 김문수 후보보다 탄핵 찬성 세력과의 단절을 표방한 장동혁 후보가 당선됐다. 물론 여론조사에서는 김 후보가 앞섰다. 이는 국민의힘이 얼마나 민심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 결과다.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친윤 강성 후보들이 대거 당선된 결과와 동일한 맥락이다. 집권당 정청래 대표 역시 더불어민주당의 강성 당원들의 지지를 받아 대표에 선출됐다. 상대적으로 온건 노선을 표방했던 박찬대 의원보다 일관되게 ‘내란 정당 해산’을 목표로 했던 정 대표를 당원들이 선호한 결과다.

거대 양당에 강경파 지도체제가 들어서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 그의 추종자들을 향한 3대 특검이 속도를 내면서 편향의 정치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신임 장 대표는 탄핵 반대 당론과 반대로 행동하는 의원들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기조다. 이는 탄핵 찬성파에 대한 인적청산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는 여당을 자극할 것이고 강성 행보를 예고하는 정 대표 등 민주당 강경파에 명분을 제공할 것이다. 이는 강성 우파 지도부가 장악한 국민의힘을 다시 결집시키고, 당내 온건파의 입지는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적대적 공생’이 기정사실화되고 극단의 정치에서 통합과 협치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장 대표는 “모든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서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는 데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당원들이 저를 당 대표로 선택해 준 것, 그것이 혁신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윤 어게인’을 추종하고 부정선거 음모론 등의 극우적 발상에 힘을 싣고 당내 개혁파를 추출하는 것이 ‘혁신’이라고 정의를 내린 것이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상법과 방송법 개정안에서 여야는 한 치의 접점도 찾지 못했다. 기업계와 노동계 역시 노란봉투법을 두고 전혀 다른 시각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일성인 통합·협치는 실질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의 한일·한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야당은 비난 일색이다. 자칫 긴 역사의 터널에 표류할 뻔했던 민주주의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정치는 본래의 대치와 극단적 갈등의 질곡에 들어섰다.

퇴행과 시대착오가 정상으로 치부되고 타협을 배제한 정치의 부재가 선명성으로 둔갑하는 지금의 정치가 복원되지 않는다면 지난해 12·3 불법 계엄과 관련된 자들에 대한 법률적 책임은 가려지겠지만 법적·사회정치적 철퇴가 내려진 계엄은 또 다른 극단주의자들의 숙주가 되는 모양새다. 거대 양당의 강성 당원과 지지자만 의식하는 정치는 정치적 통합과 협치를 바라는 중도의 보편적 민심과 순행할 수 없다. 역행의 정치가 다시 민주화 이전의 일부 엘리트들의 공익을 빙자한 사익을 탐닉하는 정치의 토양이 돼선 안된다. 양대 정당은 지지층만을 의식하는 정치를 버리고 대다수 민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천착하는 책임과 반응의 정치로 돌아와야 한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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