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아동확인증에도 ‘발굴 난항’… 정보 비공유, 美 DACA ‘신청 쇄도’
미등록 이주아동 위해 시흥서 첫 시작후 도내 확산중
의료비 지원 등 혜택에도 ‘통보 의무’ 있어 유도 한계
미국, 국가안보·공공안전 이외엔 단속목적 사용 안해
미등록자도 개인 납세자 번호 받아 자발적 세금 설계
2022년 기준 사회보장·메디케어 등 약 21억달러 납부
전문가 “정부, 지자체와 역할충돌 불가피 권한 이양을”
미등록 이주아동을 위한 ‘아동확인증’ 발급 제도는 시흥시에서 처음 시작됐다. 그러다 최근 화성시까지 동참했고 이제 경기도가 도내 전역으로 확산하려 한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통보의무’부터 제약을 받아 대상자 발굴에 한계가 있다.
반면 미국은 DACA를 통해 숨어 있던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자발적으로 제도 안으로 들어오도록 유도하고, 이들이 일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경제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에 한국도 미등록 이주아동을 단속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확인증 발급과 의료비 지원에도 여전히 어려운 ‘발굴’
2일 시흥시에 따르면 2023년부터 지난 6월까지 총 76명의 아동이 ‘시흥시 아동확인증’을 발급받았다. 이 중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경우가 68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국적은 베트남, 몽골, 중국,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 다양하며, 연령대도 2012년생부터 2025년생까지 폭넓다.
아동확인증을 발급받으면 시내 도서관 등의 이용이 가능하고, 가장 큰 혜택은 예방접종 및 건강보험 혜택 등 의료비가 지원된다. 시흥과 화성은 확인증 발급자를 대상으로 ‘프로젝트 169 사업’을 통해 지역 의료기관과 연계, 예방접종부터 외래·입원 진료, 약제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의료비를 지원받은 아동은 시흥시 6명(5월 기준), 화성시 3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민자는 엄연한 경제활동 인구… DACA, 기회이자 카운트의 도구
하지만 대상자 발굴은 쉽지 않다. 시흥시 관계자는 “발급을 위해 한국에 온 시기나 비자가 만료된 사유 등을 질문하면 경계하는 태도가 느껴지는 건 사실”이라며 “좋은 의도임에도 인적사항을 알리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고 했다. 이어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지인이나 의료기관, 센터 등을 통해 듣고 알음알음 신청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달 12일 시흥시의 한 다문화센터에서 만난 김누리(몽골·가명)양은 지난해 시흥시의 아동확인증을 발급받았지만, 여전히 주변 친구들에게 미등록 체류자 신분을 숨기고 있다. 그는 내년에 체류 기간 요건인 7년을 채워 법무부에 임시 체류자격을 신청할 계획이다. 그러나 “자신이 외국인, 특히 미등록 체류자라는 사실이 학교 친구들에게 알려질까봐 항상 두렵다”고 털어놨다.
김양은 “친한 친구들 외에는 대부분 나의 외모나 말투만 보고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스스로 한국 국적에 가깝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학기 초 선생님들이 바라는 점을 써보라고 하면, ‘외국인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며 “특히 ‘미등록’ 신분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서, 학교처럼 소문이 빠른 곳에서는 더 조심하게 된다. 친한 친구에게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고 부연했다.
■ ‘정보 공유하지 않는 미국’ 다카 신청 몰린 배경
미국에서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적극적으로 다카(DACA)를 신청했다. 제도 시행 1년 후인 2013년 6월까지 50만명 이상이 신청했고, 그 중 약 40만명이 승인을 받았다. 전체 수혜자가 83만 명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 이상이 시행 초기 제도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규모 신청이 가능했던 이유로 ‘기관 간 정보 비공유’ 원칙을 꼽는다. 미국 연방법(IRC § 6103)은 국세청(IRS)이 납세자의 정보를 비밀로 유지할 의무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즉, 국세청은 이민 단속 기관(ICE 등)에 개인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이에 미국 정부도 DACA를 시행할 당시 “DACA 신청자의 정보는 국가 안보나 공공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ICE나 CBP 등 이민단속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FAQ/Q21)”고 명확히 밝힌 바 있다.
고기복 모두를위한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는 “미국은 국세청과 출입국사무소가 정보를 교환하지 않기 때문에, 미등록자도 ‘ITIN’(개인 납세자 번호)을 발급받아 세금을 자발적으로 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며 “세금 납부 실적 등은 향후 체류 자격 부여의 근거 자료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체류 전환 정책을 시행할 때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경제 살린다”는 인식 확산, DACA 지지 여론도 높아
DACA 수혜자들이 납부한 세금과 임금은 미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23년 미국 이민정책센터 등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수혜자들은 연간 총 279억 달러의 임금을 받았고, 사회보장제도 및 메디케어에 약 21억 달러를 납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경제활동이 데이터로 축적되면서, DACA 수혜자들의 경제 기여도도 수치로 입증되고 있다. 캠퍼스 글로벌 이민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서류미비 청년들이 시민권을 취득할 경우 향후 10년간 미국 GDP를 약 8천억 달러까지 증가시킬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배경은 긍정적인 여론 형성으로도 이어졌다. 최영수 이민법 전문 (뉴욕주)변호사는 “DACA의 핵심은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한 데 있다”며 “이 제도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포괄적 이민개혁’에 공화당이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경제 주체로서 활동을 허용하는 쪽으로 타협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배경 덕분에 DACA 수혜자들은 대체로 똑똑하고, 경제에 기여하는 존재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미등록 이주아동을 포함한 이주노동자를 단속 대상이 아닌 ‘경제주체’로 보는 시각 전환과 그에 맞게 제도를 설계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언한다.
류이현 민주연구원 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은 “법무부는 단속과 통제가 주 업무이다 보니, 이민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며 “지자체와의 역할 충돌이 불가피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수요가 있는 지역에서 이민자를 활용하려면, 법무부의 권한 일부를 지자체로 이양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역 특성에 맞춰 필요한 산업과 노동력에 이민자를 연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이영지·목은수기자 bbangz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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