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에게 빵 사다 준 아주머니

대답은 “이런 빵 잘 안 먹는데…”

밭을 분양해 준 주말농장 관리인

자기 땅처럼 비용도 안내는 이들

사람은 약하게 나오면 더 짓밟아

김예옥 출판인
김예옥 출판인

차를 탈 수도 안 탈 수도 없는 애매한 지점에 살고 있어 걷는 일이 빈번하다. 출퇴근도 마찬가지다. 사무실까지의 거리가 2㎞ 정도여서 5년 전부터 그냥 걸어다닌다. 그러다보니 차로 휙휙 지나칠 때는 몰랐던 주변의 많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아파트를 막 나오면 어린이공원이 나타난다. 놀이기구가 설치돼 있어 현장학습을 오는 유치원 아이들부터 방과 후의 청소년들까지 왁자지껄 놀다 가는 곳이다. 노인들이 많아 아이들의 자취는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길 건너편에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는데 지금 한창 예쁜 색깔의 수련이 피어나고 있다. 이곳의 이름은 ‘수변(水邊)공원’. 아파트로 향하던 주민들은 연못가에서 꽃과 오리를 구경하느라 발길을 멈춘다. 저녁이 되면 제법 으슥한데 그래도 오가는 사람이 많아 위험하진 않다. 나는 늦은 퇴근길에 벤치에 앉아 풀벌레 소리를 듣기도 하고, 연못에 비친 달을 감상하기도 한다. 그런데 올해는 초여름까지 맹꽁이 서식지를 만든다고 공원을 막아놓아 이용할 수가 없었다.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공원을 망가뜨리고 왜 억지로 맹꽁이 서식지를 만들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설명문에 따르면 환경부로부터 생태계복원사업비를 받았다고 한다). 기후 변화가 심해지면서 맹꽁이가 울면서 알을 까는 봄철에도 비가 없다. 앞으로 그 서식지를 살리려면 얼마나 많은 물을 끌어와야 할까? 걱정이 앞선다.

지자체가 공원 관리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는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때로는 시청에 전화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게 공원과 도서관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흠을 잡자면 자연을 너무 건드리고 있다. 예산을 사용하기 위해서인지 1년에 한 차례 뒤집는 건 보통이고, 고치는 것도 에너지를 낭비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또 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할 부분까지 과잉친절을 베풀고 있다. 시설은 자꾸 늘어나고 자연은 더 훼손된다.

공원을 지나 분수광장이 나오는데 그곳 벤치에는 대형 트렁크 4개를 갖고 있는 노숙자가 머물고 있다. 며칠 전 모르는 아주머니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저기 노숙자 있죠? 너무 안돼 보여 슈퍼에서 빵을 사다줬더니 아니, 뭐라는 줄 아세요? ‘나는 이런 빵은 잘 안 먹는데… 한번 먹어보죠’ 하는 거 있죠.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깨끗이 먹고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더라고요. 이제는 함부로 남한테 친절 안 베풀려고요.” 나는 “맞아요. 요즘은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라 남한테 말 걸기가 겁나요”라고 맞장구쳤다. 노숙자도 자기 처지를 튕기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 도롯가를 따라 걸으면 화원들이 잇달아 나타난다. 8월 중순부터 국화꽃이 나오기 시작해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얗고 노랗고 보랏빛인 국화는 그래도 아직 이른 감이 있다. 한켠에는 파릇파릇한 배추와 무 모종이 놓여있다. 벌써 김장거리를 심어야 하는 계절이 되었다!

근처에는 윤석열씨가 구속돼 있는 서울구치소가 있는데 연일 시위로 소란하다. 화원 주인은 “여기 있으니까 시위 소리가 너무 잘 들려요. 한 팀도 아니에요. 모두 네 편이 다른 소리를 내더라고요.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라며 말끝을 흐린다. 느닷없이 고성이 터지다 쓱 빠지는 식의 게릴라 시위로 인근 주민들은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막무가내 시위가 꼭 윤석열씨의 행태를 닮았다. 우리가 언제까지 저런 것을 봐줘야 하나?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볼뿐이다.

화원을 지나면 작은 구획으로 나눠진 밭이 나타난다. 이름하여 주말농장이다. 들깨와 대파와 고추와 고구마 줄기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한편에선 막 심은 배추와 무 모종이 뿌리를 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주말농장 관리인은 늘 뒤에서 궁시렁거린다. 자신이 밭을 개간해 어렵게 주위 사람들에게 분양해줬더니 이제는 마치 자기 땅처럼 비용도 안 내고 있단다. 사람들은 약하게 나오면 더 짓밟는다. 자기 주장도 못하고 밭이 없으면 못 살 것처럼 오매불망하는 관리인의 약점을 누군가 적당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예옥 출판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