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서사 아닌 평범한 사람들 희생에 초점

다양한 뮤지컬 넘버와 군무 등 볼거리 多

 

12~13일 부평아트센터, 19~20일 인천중구문화회관

지난 3일 오후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 대연습실에서 진행된 창작 뮤지컬 ‘인천상륙작전: 그 밤, 불빛 하나’ 시연 장면. 2025.9.3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지난 3일 오후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 대연습실에서 진행된 창작 뮤지컬 ‘인천상륙작전: 그 밤, 불빛 하나’ 시연 장면. 2025.9.3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인천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이 인천에서 초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9월15일 연합군이 인천 앞바다에서 펼친 대규모 상륙작전으로, 그해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낙동강전선까지 밀렸던 한국군과 유엔군에 역전의 발판을 만들어 준 전투입니다.

선글라스를 쓰고 담배 파이프를 문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유엔군 총사령관이 작전을 지휘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독자들이 많을 겁니다. 영화 등 미디어에서 다루는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대표적 이미지라 할 수 있습니다. 주로 영웅담으로 그려지곤 합니다.

이번에 극단 십년후가 제작한 창작 뮤지컬 제목은 ‘인천상륙작전: 그 밤, 불빛 하나’입니다. 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 공모 사업에 선정돼 제작된 작품입니다. 늘 그랬듯 영웅담일까요? 이 뮤지컬이 인천상륙작전을 어떻게 다뤘을지 궁금해 극단 십년후가 지난 3일 오후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 대연습실에서 개최한 기자 간담회 겸 시연회를 찾았습니다.

시연회에서는 뮤지컬의 초반부 30분 정도를 관람했습니다. 1950년 6월 어느 날 인천항 인근 옛 도심으로 보이는 공간에서 경쾌한 스윙재즈풍의 첫 번째 넘버와 함께 그곳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춤을 추며 일상을 소개합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춤과 노래가 끝나자마자 들려오는 전쟁 소식. 삽시간에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피란 행렬과 이별 장면이 이어지더니 록음악과 함께 북한군이 등장하네요. 여주인공 지수(서찬영)와 북한군 대대장 주철(윤진웅)의 이뤄질 수 없는 로맨스, 북한군이 점령한 인천에 잠입하는 한국군 특수부대의 모습으로 분위기를 고조합니다.

지난 3일 오후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 대연습실에서 진행된 창작 뮤지컬 ‘인천상륙작전: 그 밤, 불빛 하나’ 시연 장면. 2025.9.3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지난 3일 오후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 대연습실에서 진행된 창작 뮤지컬 ‘인천상륙작전: 그 밤, 불빛 하나’ 시연 장면. 2025.9.3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여기까지 봤습니다. 5개 넘버가 공개됐고요. 대중성 있는 뮤지컬의 공식을 따르는 전개와 다양한 레퍼토리로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22명의 배우가 출연합니다. 지수의 독백을 담은 넘버도 인상 깊었습니다. 지수 역의 서찬영 배우의 가창력이 상당합니다. 본 공연에서도 기대됩니다.

역사에 가려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한 서사가 뮤지컬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연합군의 대규모 선단이 인천으로 상륙해 단숨에 북한군을 몰아내기까지, 어떠한 희생이 있었으며 어떤 이름 없는 영웅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실제 인천상륙작전 당시 수많은 민간인 피해가 있었습니다. 북한군에 의한 피해는 물론 연합군의 대대적 공습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고 민간인이 희생되기도 했죠.

뮤지컬 연출을 맡은 위성신 감독은 기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맥아더입니다. 이번 작품의 주제는 ‘No war’(전쟁 반대)입니다.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인생을 피폐하게 하는지, 그날을 살았던 사람들을 통해 전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주인공 두 남녀 사이를 남과 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6월25일과 9월15일 사이 3개월 동안 인천은 어떤 상황이었고,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여름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했습니다.”

지난 3일 오후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 대연습실에서 진행된 창작 뮤지컬 ‘인천상륙작전: 그 밤, 불빛 하나’ 시연 장면. 2025.9.3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지난 3일 오후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 대연습실에서 진행된 창작 뮤지컬 ‘인천상륙작전: 그 밤, 불빛 하나’ 시연 장면. 2025.9.3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이야기를 쓴 김윤주 작가 또한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면서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아픈 역사를 지금도 갖고 있다. 누구도 조명하지 않았을 법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서찬영 배우의 소감도 주목받았습니다.

“영웅 위주의 설명이 아닌, 여성이 이끌어가는 뮤지컬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했어요. 영웅이 탄생하기 위해선 이름 없는 이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지수라는 인물이 함축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뮤지컬 ‘인천상륙작전: 그 밤, 불빛 하나’는 인천시의 인천상륙작전 75주년 기념 주간인 오는 12일과 13일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 3차례 공연한 후, 이달 19~20일 인천중구문화회관에서 2차례 공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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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않은 전쟁, 아픔딛고 미래로·(7)] 인천상륙작전의 빛과 그림자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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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으로 대규모 병력이 상륙, 낙동강 전선에 집중한 북한군의 허를 찌른다는 작전 구상은 대담함을 넘어 무모해 보였다. 그 난관을 돌파한 상륙작전은 한국군과 유엔군이 총반격하는 발판이 됐고, 이후 한국전쟁을 상징하는 전투이자 신화로서 지위를 굳건히 다졌다.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도 전쟁은 3년 가까이 이어진 후에야 정전에 이르렀다. 인천상륙작전 직후 펼쳐진 전황이 한국전쟁을 교착 국면에 빠지게 하면서 상륙작전의 성공을 퇴색시키기도 했다. 상륙작전 전후 민가와 시가지를 향한 대대적 공습으로 월미도와 인천 도심은 만신창이가 됐다. 인천지역의 피해에 대해선 다음 하(下)편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기로 한다.조수간만의 차 크고 질퍽대는 갯벌 악조건맥아더 총사령관, 참모들 반대속 인천 고집함대 261척·미군 등 7만5천명 대규모 투입낙동강 전선에 집중한 적군 허찌른 담대함한국·유엔군 북진 - 북한군 퇴로 차단 성과예상보다 더딘 서울 수복으로 빛바랜 성공■ 압도적 상륙작전1950년 9월15일 새벽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은 함대 261척, 미 해병대 1개 사단과 육군 7개 사단을 비롯한 총 7만5천명의 병력이 투입된 육·해·공 입체 작전이었다. 미 해군은 20㎞에 걸친 반원형 대형을 펼쳐 200여척이 넘는 함선을 서서히 전진시켰고, 상륙정(LST)들이 탱크와 해병대를 싣고 일렬로 월미도로 향했다. 프랑스 종군기자 4명의 기록을 묶어 낸 '한국전쟁통신'(2012·눈빛)에 실린 르포기사의 한 장면을 보자."6시 30분, 큰 상륙정들이 섬의 갯벌에 앞문을 들이대고, 적군의 전방에서 아무런 저항도 없는 것에 다소 당황한 해병대를 토해 냈다.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아홉 대의 불도저 탱크들이 포로의 파인 구덩이 속에서 거대한 벌레처럼 비틀대며 숲으로 포를
https://www.kyeongin.com/article/1633872
[끝나지않은 전쟁, 아픔딛고 미래로·(8)] 인천상륙작전의 빛과 그림자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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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었다고 꼽히는 군사 작전의 이면은 지역 차원에서만 간간이 다뤄질 뿐이다.전갑생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Archive Ⅱ)에서 발굴한 <사진 1>을 살펴보자. 인천상륙작전 당일인 1950년 9월15일 인천 월미도 동쪽 마을의 한 민가가 폭격을 맞아 불타고 있고, 소총을 든 유엔군 병사들은 수색 활동을 하는 듯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사진 1>의 행간을 조금 더 읽어보자. 활활 타오르는 민가는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 며칠 전 월미도 일대 공습에서 대대적으로 퍼부은 화염 무기 '네이팜(Napalm)탄'의 위력을 보여준다. 집에 난 불을 꺼야 할 집주인이 사진 속에서 보이지 않는 건 폭격으로 인한 희생 또는 피난으로 섬에 살던 주민들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문이 남는다. 정말로 전쟁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을까.상륙직전 3천℃ 불바다 만드는 '네이팜탄' 투하전세 순식간에 뒤집었지만 수많은 민간인 희생인천 피해 막심했는데… 미군 부대 막사는 멀쩡전갑생 연구원 "부수적 희생", 헤이그협약 위반■ 단테가 그린 지옥, 월미도인천상륙작전 당시 인천지역 피해에 대해선 정부의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8년 '진실'로 규명한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 보고서와 미국, 프랑스 기자들이 쓴 한국전쟁 논픽션들을 종합했다. 상륙작전 닷새 전인 1950년 9월10일 항공모함에서 이륙한 미 해병대항공단 항공기들이 월미도 동쪽 지역에 세 차례에 걸쳐 95개(tank)의 네이팜탄을 투하하고, 육지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다. 유엔군은 9월13~14일 월미도와 인천항 등 시내 일대 함포사격과 공습을 감행하며 다음날 상륙을 개시한다.월미도
https://www.kyeongin.com/article/1635561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