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모인 북·중·러 관계는 화기애애(和氣靄靄), 문자 그대로 화목한 분위기가 하늘 가득 번진 노을 같았다. 북러 정상회담에서 푸틴은 “북한군의 희생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 감사를 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형제의 의무”라고 답했다. 지난해 양국이 체결한 동맹급 조약이 러-우 전장의 전선을 공유한 혈맹의 결실임을 재확인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의 북한 예우도 극진했다. 북중 정상회담 후 김 위원장만을 위한 단독 만찬을 가졌다. 김 위원장은 “세상이 변해도 북중 양국 인민의 친선의 정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자 시 주석은 “북중이 운명을 함께 하고, 서로를 지켜주는 좋은 이웃이자 친구이자 동지”라고 화답했다. 조중 동맹의 불가역성을 강조한 것이다. 시 주석은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고, 김 위원장은 북중러의 유엔 공조를 역설했다. 중국의 북한 핵 보유 인정과, 북·중·러 안보·경제협력을 위한 국제 공조 가능성이 열렸다.

북·중·러의 신동맹 행보가 끝나자마자 미국이 한국인 300여명을 쇠사슬과 케이블타이로 묶어 불법체류자로 체포했다. 한미 동맹 역사에 없던 경천동지할 장면이다. 비자 문제라지만 외교로 해결할 일을 야만적인 법 집행으로 동맹 국가와 국민을 모욕했다. 불과 10여일 전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칭찬외교에 파안대소 했던 트럼프는 “ICE(이민세관단속국)이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입장에선 5천억 달러 주고 뺨 맞은 봉변이다. 대통령실이 7일 석방 교섭 타결을 알렸지만, 쉽사리 아물 상처가 아니다.

시 주석의 “평화냐 전쟁이냐”는 대미 경고에 북·중·러가 한 줄로 섰다. 반면 트럼프의 ‘마가(MAGA)’는 미국에만 위대하지(Great) 동맹과 우방에겐 우울하다(Gloomy). 신흥 강대국 중국을 중심으로 공산·사회주의 및 제3세계 진영의 동맹과 협력은 일사불란한데, 전통 강대국 미국의 민주주의 동맹은 미국의 곳간을 채우느라 진이 빠졌다.

국제정세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졌다. 어정쩡한 중립은 멜로스의 비극으로 재현될 정세다. 이젠 10월 말 경주 APEC에 미·중 정상이 모두 참석할까 봐 걱정이다. 한국을 향해 똑바로 줄 서라고 동시에 을러댈 수 있다. 이런 판국에 미국은 한국을 모욕했다. ‘MAGA’가 중국의 주도권을 강화하는 역설을 트럼프만 모른다. 낯선 미국이 불안하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