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8세 시설 퇴소 보육원 청소년
사회적 관계망 부족에 생 마감도
이들 이야기 다룬 연극 단체관람
연대·공감 이끌어내는 것은 ‘비극’
그들을 보듬는 여정 기꺼이 동참
보육원 출신 청년들이 잇따라 생을 내려놓고 있다. 유서조차 남기지 않은 그들의 주거지(원룸 혹은 고시원)에는 생전 지독하게 들러붙어 있었을 지병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외로움이라는 지병, 상상하는 것만도 괴롭고 아프다.
보육원 출신 청소년은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나와야 한다. 이후 자립준비 청년으로 살아간다. 약간의 정부 지원을 받으며 사회로 나오지만 그들을 흔쾌히 받아주는 곳은 없다. 대학에 진학하기도, 직장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오롯이 혼자 살다 보면 사회적 관계망 부족과 적응력 부족으로 고립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다 생을 내려놓는다. 최근 5년 동안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자립준비 청년이 20명에 이른다.
2005년 노숙인 인문학을 시작했다. 20여 년 동안 한해도 쉬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 종종 질문을 받는다. 돈이 되는 것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 일을 왜 하느냐고. 내 대답은 늘 하나였다. 그들의 외로움을 외면할 수 없어서라고. 노숙인은 단지 경제적 약자이기만 한 게 아니다. 노숙인은 사람이 없는 사람이다. 사람이 없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살기 힘들다.
작년부터 자립준비 청년들을 찾아 나서고 있다. 다가가 곁이 되어주기 위해서다. 이름하여, 곁이 되는 인문학(곁인문학)이다.
서울 은평구, 자립준비 청년들에게 저녁밥을 지어주는 곳이 있다는 얘길 듣고 찾아갔다. 곁인문학을 제안했지만 성사시키지 못했다. 강좌를 진행하기 전에 그들과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배우는 계기였다.
성남시,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로 찾아갔다. 탈학교 청소년과 자립준비 청년들의 둥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지자체장 바뀐 뒤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터였다. 그곳에서 인문강좌를 진행했다. 생명보험 사회공헌위원회의 지원 덕분이었다.
내년에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디딤돌 인문학(노숙인, 지역자활, 교정시설)에 더해 탈학교 청소년과 자립준비 청년을 위한 강좌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책고집 회원들과 함께 연극 ‘조립식 가족’을 단체관람했다. 수십 년만의 대학로 나들이였다. 살짝 들뜨고 은연 설렜다. 극장 입구에서 지인들, 특히 올해부터 책고집 소속 강사로 활동 중인 배우 손지나씨(드라마 ‘더 글로리’ 연진이 엄마 역)와 인사를 나누고 함께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 배우의 독백으로 연극이 시작됐다. 도입부는 어수선했다. 코미디극인 것도 같았고 얼핏 부조리극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랜만의 연극 관람이니 모든 게 낯설게 느껴졌고 사전 정보가 없었으니 딱히 기대할 것도 없었다. 속속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몸짓과 대사는 거칠고 투박했다. 그런데, 그런데도 말이다.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극에 완전히 몰입됐다.
아, 보육원 출신 청년들의 이야기다.
‘조립식 가족’의 등장인물들은 일찍이 프로이트(후기논문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와 그의 딸 안나 프로이트(‘자아와 방어기제’, 열린책들 간)가 역설했던, 자존감 낮은 사람(low self-esteem)의 일그러진 심리를 그대로 표상했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얽히고설킨 관계의 매듭을 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자존감 낮은 사람들의 고통과 갈등이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보는 내내 아리고 아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거기 빠져들고 말았다.
인간의 삶은 멀리서(tele-)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peri-) 보면 비극이다. TV로 본 ‘조립식 가족’은 희극(멜로드라마)이었지만 눈앞에서 재연되는 연극 ‘조립식 가족’은 비극적이었다.
연대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건 역시 비극이다. 함께 웃었던 사람은 잊을 수 있지만 함께 울었던 사람은 잊지 못한다. 연극 ‘조립식 가족’은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자립준비 청년들을 이해하고 보듬어줄 사람들을 찾아 나선 지난한 여정이었다. 그 여정에 기꺼이 동참하기로 했다.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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