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적 상상력 ‘초록빛 목소리’
추억 담은 물건에 정념 깃들어
도깨비굴은 미분화된 세계상태
친구와 연결돼… 떠날 수 없어
인형 간직처럼 지켜야하는 곳
연극 ‘초록빛 목소리’(안정민 작, 이래은 연출, 8월23~29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는 도깨비들이 살고 있는 매천이 배경이다. 인간을 홀리고 초록빛 불꽃을 만드는 신비, 인형으로 변신하는 수민, 무지개떡을 만드는 미라, 예쁜 걸 좋아하는 지선. 도깨비들이 철거 위기에 놓인 매천의 도깨비굴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는 이야기이다.
연극 초록빛 목소리는 신화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반딧불이가 사라지고 없는 세계에 도깨비불이라고 남아 있을까 싶으나 도깨비 이야기는 여전히 힘이 있나 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주목을 받은 붉은 악마 로고에 등장하는가 하면, 2016년 겨울부터 방송한 텔레비전 드라마 도깨비가 큰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최근 발표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도 당당하게 등장하니 말이다. 도깨비는 신적 역량을 지니고 있으나 단기 기억상실로 인해 불완전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 연극은 동화적이자 시적인 작품이다. 단지 도깨비 이야기라서 동화적 상상력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될 수 있으며 또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이야기의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된다. 너무나 익숙해서 보면서도 보이지 않던 사물들이 새로운 얼굴을 하고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세계를 받아들이게 되면 도깨비 이야기가 조금은 다르게 들릴지도 모른다.
사물에 깃들어 있는 정념은 물건을 특별하게 만든다. 그 물건이 간직하고 있는 사연에 의해 물건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정념이 깃든 물건이 된다. 추억을 담고 있는 물건에는 정념이 깃들게 된다. 함께한 시간이 물건에 배어 있어 물건을 간직한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시시하고 사소해 보이는 물건일지라도 소중하고 특별한 무엇이 되는 것이다. 낡은 의자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의자의 주인이 떠나고 없는 지금 의자가 주인을 대신하기 때문이며, 낡아빠진 인형을 여전히 품고 있는 사연은 떠나고 없는 친구를 인형이 대신하기 때문이다. 손때가 묻은 물건은 그 손때만큼의 이야기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시적 상상력은 변신 모티프로부터 온다. 시적인 특성은 길고 세세한 지문을 직접 전달하는 데서도 오지만 무엇보다 비유의 언어와 변신 메타포를 갖는 도깨비 이야기에서 온다. 물건이 변해서 도깨비가 된다는 상상력은 무생물의 변신 이야기이다. 정념이 깃든 물건이 버려질 때 도깨비가 생긴다고 한다. 빛나는 시간을 함께한 경우라면 버려진 신세가 느끼는 한이 얼마나 크겠는가. 정념이 깃든 물건과 분리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동안은 망각하지 못하게 된다.
왜 도깨비굴일까. 포클레인이 도깨비굴을 파괴하는 상황 설정은 자연을 파괴하고 탄생하는 문명의 이야기이겠으나 조금 더 근원적인 물음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도깨비굴은 미분화된 세계상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미분화된 세계에서는 이승과 저승이 이어져 있다고 본다. 여기와 저기로 아직 분화하지 않고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미분적 상상력은 신화의 세계를 지탱하는 바탕이다. 인형의 모습으로 변한 수민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미분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이 연극은 출발조차 할 수 없다.
“도깨비가 되고 싶습니다.” 생기부에 장래 희망으로 적어달라는 신비를 수용할 수 있다면 이제 도깨비의 세계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이다. 조금은 생뚱맞으나 핑크 플로이드를 좋아한다거나 시인이 되고 싶다거나 하는 말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이제 신비가 도깨비굴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여기 수민이가 노래하던 곳이야.” 친구와 함께한 곳인 도깨비굴이 갖는 장소성은 조금 과하게 의미를 부여해도 좋지 않을까. “여기가 우리 집이야.” 인형과 마찬가지로 도깨비굴은 수민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떠날 수도 없고 파괴할 수도 없는 곳이다. 인형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도깨비굴은 지켜야 하는 곳이다.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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