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민 우선주의’ 트럼프라는 변수
길 잃은 텍사스 청년들의 삶
주내 고교 졸업시 학비 혜택 정책 뒤바뀌며
3배 가까이 오른 등록금에 학업 포기 속출
대학생 5만7천명, 고교생 19만7천명 영향권
트럼프 행정부 이후 DACA 수혜자 불안정
ICE 단속 학교·교회 등 성역 개념 사라져
전문가 “보호정책 법으로 명문화해야” 지적
미국 텍사스 A&M대학교(TAMU)에 재학 중이던 디에고(멕시코·가명)는 최근 학교를 자퇴했다. 9월 가을학기부터 적용된 ‘주외(out-of-state)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등록자(Undocumented student) 신분인 그는 그동안 텍사스 거주 학생과 동일한 등록금을 냈지만, 지난 6월 텍사스주가 ‘드림액트 법안’(Texas Dream Act)을 폐지하면서 등록금이 세 배 가까이(5천달러→ 1만3천달러) 뛰었다.
디에고는 이러한 결정이 ‘너무 갑작스러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법안 폐지가 밤 8시에 결정됐는데, 나도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학교에 문의를 해도 ‘알아보는 중’이라는 말뿐이었다”며 “지금도 텍사스에서는 예고 없이 정책이 뒤바뀌고 있어서 준비할 시간조차 없다. 결국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DACA 프로그램이 다시 위협받으면서 미등록 청년들의 일상이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다. 교육 기회를 잃고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추방 위험까지 현실로 다가온 상태다. 미국 이민 정책이 근본부터 흔들리자 미등록 이주 아동을 위한 법적·제도적 보호 장치 마련의 필요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 단속대상으로 보는 한국, 경제주체로 보는 미국
최석호 美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이민자 없으면 경제마비”
■ 24년 만에 사라진 드림액트… 교육 기회 잃은 텍사스 청년들
텍사스 드림액트는 미등록자라도 텍사스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주내 등록금과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법안이다. 2001년 제정돼 24년간 시행돼 왔으나, 지난 6월 4일 전격 폐지됐다. 이 법안은 미등록 학생들에게 교육 기회를 보장하고, 텍사스 내 인력난을 해소하는 데도 기여해 왔다. 앞서 경인일보가 캘리포니아주에서 만난 정은수씨와 김석우(가명)씨도 이러한 지원 덕분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갑작스레 결정된 법안 폐지로 텍사스에 사는 학생들의 삶은 순식간에 흔들렸다. 지난 7월 14일 텍사스 A&M대학교 샌안토니오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은 “텍사스에서는 내가 미등록자가 아니어도 가족이나 친구 중 미등록자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소문도 함께 퍼지면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루시아나(미국·가명·19)는 “나는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지만, 부모님은 라틴계 미등록자다. 최근에는 시민권자라도 부모가 없으면 추방될 수 있다는 말까지 들려와, 부모님과 떨어질까 봐 두렵다”고 털어놨다. 이어 “예전에는 일부 백인들이 이민자들을 속으로만 싫어했지만, 지금은 SNS에 ‘불법 이민자 신고 시 포상금 지급’ 같은 글이 공개적으로 올라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학생 토베(나이지리아·가명·21)는 12살에 미국에 와 난민 비자로 체류 중이다. 그는 “2년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가족 모두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가야하고 준비 서류도 크게 늘었다”며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명확한 제도가 마련돼, 시간이 걸리더라도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폐지로 인해 텍사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재학 중인 미등록 학생 약 5만7천명, 그리고 졸업을 앞둔 18세 미만 학생 약 19만7천명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드림액트를 폐지한 플로리다에 이어, 텍사스에서도 법안이 철회되면서 현재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 주내 학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주는 23곳에 불과하다.
■ 공화당 주도의 법적 공세… 법원 “DACA는 위법”
텍사스 드림액트 폐지는 DACA 폐지를 둘러싼 보수 진영의 법적 공세 흐름에서 비롯됐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는 DACA가 대통령 권한을 넘어선 ‘위헌’이라며 폐지를 선언했다. 당시 제프 세션스(Jeff Sessions) 법무부 장관은 “불법체류자에게 시민과 같은 혜택을 주는 것은 이민법의 엄정한 집행을 약화시키는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뉴욕 등 연방 지방법원은 행정부의 DACA 폐지가 “충분한 설명 없이 이루어졌다”며 제동을 걸었고, 2020년 6월 연방대법원도 ‘절차적 위반’을 이유로 DACA를 폐지하는 건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21년 텍사스 연방법원은 DACA 자체가 불법이라고 판단했고, 신규 신청을 금지했다. 같은 해, 텍사스를 포함한 9개 공화당 주정부는 “오바마 행정부가 의회 승인 없이 이민법을 임의로 변경했다”고 주장하며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는 행정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DACA를 ‘최종 규칙(Final Rule)’ 형태로 보완했다. 그러나 2023년 9월 텍사스 연방법원은 개정된 규칙조차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데, 대법원까지 갈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 “정책이 아닌 법이 필요하다”… 제도화 요구 거세져
DACA는 본질적으로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시행된 정책이다. 이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존폐 위기에 놓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DACA 폐지 시도 이후 잇따른 법적 소송들은 미등록 청년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시민들은 DACA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이다. 여론조사 기관 ‘무어 인포메이션 그룹(Moore Information Group)’과 비영리단체 ‘FWD.us’가 2020년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66%가 DACA를 지지하고 있다. 지난 7월 갤럽(Gallup) 조사에서도 응답자 85% 이상이 “어린 시절 미국에 온 이들에게 시민권 취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미등록 이민자 단속 강화가 지역 사회와 경제도 흔들기 때문이다. 텍사스 기반 아시아계 이민자 커뮤니티 ‘우리훈또스’(Woori Juntos) 앨리스민 활동가는 “과거에는 ICE 단속이 학교나 교회 같은 장소에서는 제한됐지만, 지금은 이런 ‘성역’ 개념도 사라졌다”며 “텍사스에서 식당, 건물 청소, 잔디깎기 같은 필수 노동을 해온 미등록자들이 외출조차 꺼리게 되면서, 신분이 있는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이로 인해 인건비도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DACA를 포함한 미등록 청년 보호 정책이 법으로 명문화돼야 이들의 삶도 보다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캘리포니아대학교(UC Berkeley)의 케이틀린 패틀러(Caitlin Patler)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 이후 DACA 수혜자들은 지속적인 불안정 상태에 놓여 있다”며 “이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시민권을 영구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목은수·이영지기자 wo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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