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기운다, 새로운 감각의 초대

작가 11명 회화·조각·사진작품 참여

1층 정현 ‘무제’ 시간의 거대함 형상화

산불로 탄 나무에 바인더 칠해 보존

故 강하진 ‘자연율 연작’ 최초 공개도

인천아트플랫폼 기획전 ‘틸팅 그라운드’에서 전시한 정현 작가의 조각들. 2025.8.2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인천아트플랫폼 기획전 ‘틸팅 그라운드’에서 전시한 정현 작가의 조각들. 2025.8.2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미술 전시장에서 흥미로운 작품을 만났을 때, 그 작품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일 때가 있다. 때론 몸을 앞으로 기울여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도 한다. 신호를 감지하듯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또다시 몸을 기울이기도 한다. 이 작은 기울임을 위해 발을 딛고 있는 땅과 몸 사이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럴 땐 새로운 감각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

인천문화재단이 인천아트플랫폼 전시장 1(B)과 야외 공간에서 진행 중인 기획 전시 ‘틸팅 그라운드’(Tilting toward Ground)는 효율과 속도의 시대에 놓치고 있는 발밑의 기반과 주변의 미세한 감각에 관한 전시다. 강동주, 강하진, 곽이브, 김경태, 문이삭, 박기원, 백경호, 신현정, 이민지, 정현, 정희민 등 작가 11명이 참여해 회화, 조각, 설치, 사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조각가 정현이 세운 3~4m 높이의 하얀색 조각들(‘무제’)의 존재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현 작가가 2023년 여수 장도 레지던시에서 머물 당시 새벽부터 해 질 녘까지 돌밭을 거닐다 주운 손바닥만 한 돌들을 3D로 스캔해 대형 조각으로 확대한 것이다. 멀리서 보면 매끈하게 다듬어진 형상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파도의 흐름이나 침식·퇴적의 흔적이 드러난다. 작은 돌에 새겨진 시간의 거대함과 역사성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하얀 조각 뒤쪽으로 정현 작가가 2019년 강원도 고성 산불로 타버린 나무를 고열로 다시 태워 더 단단하게 만든 후 바인더를 칠해 형태를 보존한 작품 ‘무제’가 배치됐다. 마치 염을 하고 화장을 하듯 처참한 상태의 나무를 정성스레 다시 보내는 의례적 행위와 같다고 인천아트플랫폼 측은 설명했다.

인천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고(故) 강하진(1943~2023) 화백이 평생에 걸쳐 이어간 ‘자연율’(自然律) 시리즈는 넓적한 붓으로 무수한 점을 찍고 지우는 수행적 과정을 통해 완성한 추상화다. 이렇게 강 화백은 시간과 감각의 미묘한 층을 화면에 채워 그의 사유를 감각하게 한다.

강 화백의 ‘자연율’은 동양 회화 전통의 ‘기운생동’(氣韻生動)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명이 있는 것들이 지닌 고유한 리듬과 내적 울림에 반응하는 감각적 조화를 뜻한다. 생전 작가는 “자연율의 세계란 카오스의 세계, 불규칙의 세계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세계”라고 말했다고 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선 강 화백이 작고하기 직전인 2018~2020년 작업실에서 종이에 아크릴로 그린 ‘자연율’ 연작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인천아트플랫폼 기획전 ‘틸팅 그라운드’에서 최초 공개되는 강하진 화백의 ‘자연율’ 연작(2018~2020년). 2025.8.2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인천아트플랫폼 기획전 ‘틸팅 그라운드’에서 최초 공개되는 강하진 화백의 ‘자연율’ 연작(2018~2020년). 2025.8.2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이밖에 전시작들은 일일이 소개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신호들을 보내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기울이다’를 ‘정성이나 노력 따위를 한곳으로 모으다’란 의미로도 정의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세계의 약한 신호에 주의를 기울여 보길 권한다. 전시는 10월26일까지 이어진다.

전시를 기획한 인천아트플랫폼 김경민 큐레이터는 “몸을 기울일 때 비로소 포착되는 어떤 순간과 감각들이 있다”며 “이 기울임이 세계와의 관계를 다시 맞추는 태도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태도를 중심으로 작업을 지속해 온 전시 참여 작가들과 함께 ‘틸팅’의 순간과 감각을 상상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