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책임의료기관’ 가천대 길병원
병원 나와서도 돌봄·재활 필요 환자 많아
형편 어려운 소외층 원활한 삶 유지 골자
지역사회 연계사업 통해 생활 전반 도움
인천 부평구에 사는 이승남(가명·85)씨는 올해 1월 보행 중 눈길에 미끄러져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119구급대에 의해 인천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된 이씨는 갈비뼈 등의 다발성 골절 진단을 받았으나 다행히 치료를 잘 마치고 건강을 회복했다. 문제는 퇴원 이후였다. 이씨의 아내도 고령이고 지병까지 있어 남편을 간호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부부는 기초연금, 그리고 이씨가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받는 급여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왔다. 이씨가 당장 일할 수 없어 생활비 마련도 문제였다.
■ 퇴원 후 재활·생계·복지 등 지원… ‘퇴원환자 지역사회 연계사업’
이승남씨 사례처럼 퇴원 후에도 지속적인 돌봄이나 재활 등 일상생활 전반에 대해 관찰이 필요한 환자들이 적지 않다.
전국 17개 시·도에 지역 국립대 병원을 중심으로 하나씩 지정된 ‘권역책임의료기관’이 ‘퇴원환자 지역사회 연계사업’을 통해 이씨와 같은 이들을 돕고 있다.
권역책임의료기관은 각 시·도 공공의료 분야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하는 병원이다. 국립대 병원이 없는 인천광역시에서는 사립대 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이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권역책임의료기관은 중증, 응급, 심뇌혈관, 외상, 고위험 산모 등 권역 내 고난도 필수의료 전달체계를 주도한다.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응급 환자의 이송이나 전원, 병원 간 진료 협력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 권역 내 병·의원과 시·군·구 보건소, 복지관 등과의 협력을 기획하고 조정한다.
전국 72개 권역·지역책임의료기관은 보건복지부 정책의 일환으로 ‘퇴원환자 지역사회 연계사업’을 펴고 있다. 이 사업은 암, 급성기 치료 예방, 합병증 관리의 중요성이 높은 뇌혈관 질환 등에 해당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중에서 가정형편 등이 어려운 환자가 퇴원 후에도 원활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함께 다각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환자가 퇴원 후 집이나 재활기관, 요양기관 등 복귀 유형에 따라 병·의원, 보건소 등 지역 유관기관들이 협력해 맞춤형 지원을 하게 된다.
퇴원 후 돌봄이 필요한 이씨 사례는 보건복지부가 구축한 ‘공공의료연계망’에 등록돼 인천지역 병·의원, 보건소, 복지관 등으로 전파됐다. 이후 이씨는 이 기관들의 도움 아래 의료비 긴급지원비를 제공받고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통해 요양등급을 신청할 수 있었다. 또 요양등급 판정 전까지 돌봄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운영 중인 긴급틈새돌봄서비스나, 소방청 119 안심콜 서비스 등도 이용할 수 있었다. 이씨가 퇴원한 지 1개월,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선 모니터링이 이뤄졌다. 그는 건강을 유지하며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씨를 포함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퇴원환자 지역사회 연계사업 관련 총 332건의 심층 상담 및 정기 모니터링이 이뤄졌다. 질환별로 구분해보면 ‘뇌혈관’이 82건(25%)으로 가장 많았고, ‘호흡기’(74건), ‘암’(38건), ‘심장’(32건), ‘감염’(26건), ‘외상’(16건) 등이 뒤를 이었다. 이 환자들에게는 총 1천86회에 달하는 지역사회 내 서비스 의뢰와 연계 지원이 이뤄졌다. 복지 58%, 의료 29%, 보건 11% 순이었다.
인구 300만… 65세 이상 비율도 16% 차지
일상생활 관리로 건강한 생활 영위 중요
김우경 병원장 “국내 최고 수준 서비스와
박애·봉사·애국… 지역서 책임 다할 것”
■ 인구 300만 ‘인천’, 고령사회 등 각종 현안에 협력하는 의료기관들
정부는 인구 300만명 대도시로 성장한 인천광역시의 권역책임의료기관으로 2021년 2월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을 지정했다. 인천에는 권역책임의료기관 아래 4개 종합병원이 ‘지역책임의료기관’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병원들이 구성한 ‘인천시 책임의료기관 공동 원외대표협의체’는 지역 공공의료 현안 해결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사업 방향 등을 협의해 실행하고 있다.
공항과 항만을 둔 인천은 도시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보건·의료 수요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동안 송도·청라·영종 경제자유구역이나 신도시 건설 등으로 인구도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특히 인천은 섬 지역인 강화군과 옹진군 등 농어촌도 품고 있어 지방의 여느 도시처럼 ‘인구 노령화’ 문제도 안고 있다.
인천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지난해 기준 49만명으로, 전체의 16%에 해당하는 ‘고령사회’(노인 인구 비율 14% 이상)에 진입한 상태다. 2019년 인천 인구 대비 노인 가구 비율도 12.5%로, 약 5년 만에 3.5%p 늘었다. 인구 노령화에 따른 보건·의료 수요 증가 등이 현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인천의 인구당 병상 수, 전문의 수, 간호사 수 등은 여전히 수도권 평균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부족한 의료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권역책임의료기관의 컨트롤타워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셈이다.
인천권역책임의료기관 사업을 이끄는 임정수 가천대 길병원 공공의료본부장은 “노인 중심 세대가 사회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고령의 환자가 퇴원한 이후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지지 않으면 결국은 환자의 건강 악화와 재입원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했다. 이어 “퇴원환자 지역사회 연계사업은 이런 사회·경제적 문제를 지역사회가 함께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했다.
퇴원환자 지역사회 연계사업은 내년 3월부터 시행되는 돌봄통합지원법에 힘입어 더욱 견고하게 뿌리를 내릴 것으로 기대된다. 이 법은 노쇠, 장애, 질병 사고 등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의료, 요양 등 돌봄 지원을 지역사회에서 통합 연계해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입법 취지다.
김우경 가천대 길병원장은 “앞으로도 국내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공의료 분야에서도 병원 운영 철학인 ‘박애, 봉사, 애국’을 실천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내에서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 가천대 길병원은
가천대 길병원은 설립자 이길여 회장(현 가천대학교 총장)이 1958년 중구 용동에 개원한 이길여산부인과의원이 발전한 인천의 상급종합병원이다.
이 회장은 1978년 여성 최초로 병원을 의료법인화하고 종합병원을 개원했으며, 가천대 길병원이 현재 위치한 남동구 구월동으로 1987년 이전했다.
이때는 서울을 중심으로 초대형 병원들이 하나둘 개원하며 규모를 확장하던 시기다.
가천대 길병원은 국립대병원이 없는 인천에서 공공의료 분야에서 큰 축을 담당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해왔다.
가천대 길병원은 정부의 중증·필수의료 분야 사업인 ▲권역응급의료센터(1999) ▲신생아집중치료권역센터(2010) ▲지역암센터(2011) ▲닥터헬기(2011) ▲권역외상센터(2014) ▲권역장애인구강진료센터(2016) ▲고위험산모·신생아통합치료센터(2018) ▲공공호흡기전문진료센터(2020) 등을 맡아오고 있다.
전문의가 동승해 환자를 이송하는 응급 환자 이송 시스템인 닥터헬기와 닥터카 등은 인천시와 함께 운영 중이다. 인천시가 위탁한 인천해바라기센터(아동), 인천광역시자살예방센터, 인천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등도 있다.
/임승재기자 isj@kyeongin.com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