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 세계적 인기

중개 없이도 한국학의 상황 메타포

글로벌 팬들 ‘이상화된 한국’ 선망

한중연, 총본산보다 ‘메카’ 더 적합

방문객들에 영감·울림 소임 다할것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식에 참석하여 이곳을 “국학 연구의 총본산(總本山)이자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한국학 연구기관”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2005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으로 이름을 바꾼 것도 이와 같은 뜻을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정신문화라는 특수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학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라는 의지가 담긴 작명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국학의 총본산’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연구원 구성원들에게 정신을 가다듬게 하는 무언의 압박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중연이 속한 정치공동체인 한국은 한국학의 총본산이라고 볼 수 있을까.

물론 한국은 한국학의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총본산’이라는 말은 어딘가 과한 지점이 있다. 한국학은 한국만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매개로 세계와 소통하는 학문이기에 그렇다. 또한 한국학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연구하는 개인, 기관들과의 활발한 교류 역시 중요하다. 오히려 이럴 때 한국학의 총본산이 한국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판단은 아닐 것이다. 바깥에서 진행되는 한국에 관한 연구를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학은 탈(脫)한국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 학문이라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여러 문화적 현상들은 ‘한국이 부재한 한국학’의 상황을 보여주는 일종의 메타포이다. 소니 픽처스가 제작하고,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을 따라 전 세계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대표적이다. 한국 문화에 존재하는 여러 상징을 영리하게 차용하여 이를 글로벌 대중문화의 방법으로 성공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한국인’이 참여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정서를 소재로 대중적으로 통하는 문화상품을 만들어냈다. 메기 강 감독은 이를 ‘코리아니즘’(Koreanism)이라 부르기도 했다. 먼 훗날의 사가들은 근대 서구의 중국, 일본, 인도, 이집트 열풍과 비슷하게 이 시기를 코리아니즘의 시대라 부를지도 모른다.

세계 각지에 존재하는 팬들은 한국에 직접 오지 않아도 한국어를 스스로 배우고, 한국 사회를 관찰하고 해석하며, 나아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 한국이라는 국가나 한국학 연구자들의 중개 없이도 세계의 팬들은 대중적 차원에서 자신들의 ‘한국학’을 실천하고 있다. 사실 이런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조선 시대 선비들은 현실의 중국이 아니라 ‘이상적 중국’을 마음속에 그리며 학문을 세웠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실제 한국을 경험하지 않고도 ‘이상화된 한국’을 연구하거나 선망할 수 있다.

물론 그 때와 다른 점도 있다. 과거 조선은 문화를 받아들이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한국이 세계에 문화를 발신한다. 수용자도 바뀌었다. 예전엔 소수 지식인에 그쳤지만, 이제는 전 세계 대중이 한국 문화를 자발적으로 즐기고 확산시킨다. K-팝의 인기는 한국어 공부와 한국 방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관심이 실제로 한국학과의 만남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토대가 마련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학의 총본산’이라는 말은 다소 겸연쩍다. 차라리 ‘한국학의 메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것 아닐까. 이슬람 세계에서 메카의 수호자는 권위를 지니지만, 동시에 메카를 성지순례하는 전 세계 무슬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앞으로 한국과 한국학의 역할은 문화 전파의 선봉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기초를 튼튼히 세우고, 세계와의 교류 속에서 문화를 다듬으며, 한국을 찾는 이들에게 영감과 울림을 주는 데 있다. 곧 반백살이 되는 한중연도 그와 같은 소임을 묵묵히 다하겠다.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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