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EU 등 AI기술개발 최우선과제 정해
‘GPT 도입·활용’ 국가, 글로벌 패권 장악
국내 유망연구자 해외행… 두뇌 확보 난제
이공계 토양 붕괴·인재확보율 선진국 최악
지난 6월 인공지능(AI) 개발에 뒤늦게 뛰어든 메타가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핵심 연구원 8명을 스카우트했는데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들의 몸값으로 첫해 연봉이 1억달러(1천360억원)다. AI시대 빅 브레인들의 몸값이 천정부지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구글, 오픈AI 등은 수억달러에 이르는 연봉과 스톡옵션, 연구 자율성 보장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우수 AI 전문가 영입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극소수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AI개발회사를 통째로 인수하는 어크하이어(acqui-hire)도 성행하고 있다.
전 세계는 왜 AI기술 확보에 열광하는가? 4차 산업혁명은 기존의 공급중심에서 수요중심의 맞춤형 생산으로 전환하는 기술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AI는 다양한 분야의 빅데이터들을 인지, 학습, 추론 등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창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일본 고마자와(駒澤)대학의 이노우에 도모히로(井上智洋) 교수는 사람들의 두뇌 수준이 글로벌 경제성장과 기업의 수익을 결정하는 ‘두뇌자본주의’의 도래를 예고했다.
4차 산업혁명의 직접적 배경은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의 장기 저성장이다. 이 나라들은 18세기 말에 시작된 제1차 산업혁명의 혜택으로 수천 년 동안 지속해온 ‘맬더스 함정’(만성적 빈곤 상태)에서 벗어났을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전 세계를 지배해 왔다. 그런데 갈수록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면서 국내는 물론 비(非) 서구사회의 도전에 직면해 서양문명의 패권적 지위가 흔들린 것이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최첨단의 범용목적기술인 AI 기술개발을 국가의 최우선과제로 정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올인하고 있다. 범용목적기술(General-Purpose Technology, GPT)을 가장 먼저 도입해서 활용한 국가가 글로벌 패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GPT는 국가 혹은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로 증기기관, 전기, 정보기술 등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미국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I. Wallerstein)은 17세기의 네덜란드, 19세기의 영국, 20세기의 미국을 각 시기의 패권국가(헤게모니국가)로 규정했다. 제1차 산업혁명에서 최초로 증기기관을 산업현장에 도입한 영국이 19세기에 패권을 잡았으며, 20세기 초에는 미국과 독일이 전기 모터를 산업의 동력원으로 활용하는 한편 내연기관의 발명품인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세계최초로 성공시켰다. 그러나 독일은 1·2차 세계대전에서 참패하면서 미국이 자연스레 20세기의 패권국가가 되었다. 디지털혁명인 제3차 산업혁명도 미국이 일으키고 견인했다.
제4차 산업혁명은 벽에 부딪힌 공업화 성숙단계 국가들의 경제를 또 한 단계 도약시켜줄 개연성이 크다. 또한 범용 인공지능을 가장 먼저 도입한 국가들이 도입이 늦어진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압도하면서 국가들 사이에 경제발전 격차가 또다시 크게 벌어질 수도 있다. 앞서 나가는 다른 국가들에게 선두를 빼앗기면 선발국들에 종속되어 경제적 수탈 대상이 된다. 더 위험한 것은 군사적으로도 현격한 차이가 벌어지는 경우이다.
한국경제도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저출생으로 조만간 생산가능인구마저 줄어들 예정이어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지경이다. 지난달 22일 이재명 정부는 향후 5개년의 마스타플랜을 발표하며 ‘잠재성장률 3%’와 ‘AI 3대 강국’ 달성을 제시했다. AI 대전환 프로젝트를 위해 민간 자금 50조원, 산업은행을 비롯한 국책은행 50조원 등 총 100조원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키로 해서 정부의 구태의연한 민간기업 팔 비틀기가 재연된 인상이다.
최대 난제는 두뇌 확보인데 국내의 유망한 연구자들이 줄줄이 해외로 이주하고 있다. 연구팀 전체가 외국으로 이직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우리의 이공계 토양이 붕괴되는 지경인데 AI분야 인재확보율은 선진국 중 최악이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 이재명 정부 5년내 ‘AI 3대 강국’ 달성이 희망 고문은 아닐까.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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