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절규’ 자기 불안·절망 표출
임매 초상화도 스스로 내면 정의
두 그림 모두 ‘본인 표현’ 공통점
18세기 들어서 사실성 → 자아 투영
‘나는 누구인가’ 고민 담아 고백도
“촌스럽지만 오히려 도도하게 보이고, 편협해 보이지만 감쌀 줄 알며, 게으르고 산만한 듯하지만 오히려 참된 모습에 가깝다네. 네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세상과 동떨어진 케케묵은 사람이라고 말하겠지.”
보면 볼수록 머릿속에 잔상이 남게 되는 어떤 그림이 있다. 이 그림에는 다리 위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의 곤두선 신경세포를 상징하듯 주변은 어둡고 탁한 붉은색과 푸른색이 만들어낸 어지러운 선율이 가득하다.
그렇다. 이 그림은 ‘절규’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 화가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작품이다. 불안과 공포, 절망 등 인간 내면 깊숙이 있는 감정을 화면에 드러내고자 했던 그는 불우했던 삶 속에서 느꼈던 정체성의 혼란을 파격적으로 형상화했다. 이런 의미에서 ‘절규’는 뭉크의 자화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맨 앞에 인용한 시는 조선 후기 시인 임매(1711~1779)가 자신의 초상화에 쓰기 위해 지은 글이다. 1777년 한정래라는 화가가 그렸으니 임매가 67세가 된 만년의 모습이다. 글은 임매의 친구 이운영(1722~1794)이 대신 썼다.
머리에는 복건을 쓰고 옥색의 포의를 입은 모습으로 책상 위에는 평소 즐겨 읽었을 법한 책과 안경, 족자가 놓여 있다. 치켜올린 눈썹 아래 쌍꺼풀 없는 또렷한 두 눈, 튀어나온 광대뼈, 다부지게 다문 입술, 얼굴 전체를 덮은 주름은 학문으로 일가를 이룬 어느 선비의 꼿꼿한 성품과 연륜을 형상화한 듯하여, 임매의 글이 없었다면 수많은 선비 초상화 중 하나로 남았을는지 모른다.
사실 뭉크의 ‘절규’와 임매의 초상화는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시대와 주인공의 모습, 재료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회화 기법적으로도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그림 모두 그림이나 글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점이 중요한 핵심이자 상통한 점이다.
조선시대 유학자의 초상은 고도의 사실성을 강조하면서 근엄하고 엄숙한 풍모를 느끼도록 그려진 예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면 주인공이 아꼈던 기물을 함께 그리거나 직접 화상찬(畵像讚)을 지어 목소리를 내는 등 변화가 있게 된다. ‘임매 초상’ 역시 타인에 의해 수동적으로 칭송받기를 거부하고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스스로 정의를 내린 예이다. 겉으로는 옹졸하고 편협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론 포용적이며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시류와 동떨어져 살아가는 삶이 진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림 속 깐깐해 보이는 외형만을 가지고는 결코 읽을 수 없는 내면의 역설이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은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초상화는 또 있다. 영조의 휘하에서 벼슬을 한 윤동섬(1710~1792)은 호가 ‘팔무당(八無堂)’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초상화에 쓰기를 재주와 덕, 고민, 사상, 경쟁, 용기, 좋아하는 물건, 학문 등 여덟 가지가 없으므로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라고 치부해 버렸다.
뭉크나 임매, 윤동섬을 그린 초상화는 자조적이지만 시공간을 넘어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그 고민은 가치관이나 인생관을 탐구하는 삶의 태도와 직결되어 있다. 세상의 기준을 버리고 겉모습과 다른 나의 참모습을 찾고자 했던 이들의 자기 고백 같은 그림이다.
/황정연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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