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주요국들 최종 책임자에

원청·모회사 지목 판결·법안 속속

유럽 새 실사 지침에 적응하라던

재계·보수언론이 ‘노란봉투법’엔

기업 죽인다며 반발, 볼썽사나워

장제우 작가
장제우 작가

1995년 대우중공업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유조선 중 하나를 건조한다. 총 8층에 높이가 330m에 달했던 이 골리앗은 20여 년간 주인과 국적이 여러 번 바뀐 끝에 2017년 9월경 폐선으로 방글라데시의 선박해체 회사에 팔린다. 그리고 2018년 3월 크레인 하나 없는 갯벌 작업장에서 노동자 칼리드 몰라는 이 거대 유조선의 8층에서 추락한 뒤 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한다.

악명 높은 방글라데시의 ‘선박 묘지’에서 사실 이런 일은 특별할 것 없는 다반사이다. 약 2만5천명이 생계를 잇는 이곳의 작업환경을 영상으로 보면 고작 연간 20여 명만 일하다 죽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아무 일도 아닌듯 지나갔어야 했던 노동자의 죽음은 그의 아내 하미다 베금에 의해 아무 일로 변하기 시작한다. 영국의 한 기업을 남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며 영국법원에 고소했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이 소송은 무리하게 보였다. 이 유조선은 폐선이 되기 전 해운그룹 CSME의 소유였고 CSME는 선박중개업체 Maran에 의뢰하여 선박처리업체 Hsejar에 매각했으며 Hsejar는 최종적으로 방글라데시의 해체업체에 판매했다. 유가족은 이 중에서 중개업체 Maran을 고소했다. 쉽게 기각될 것으로 보였던 이 소송은 법정에서 반전을 맞이한다.

법원에 따르면 Maran사는 중개 과정에서 적절한 작업환경을 갖춘 곳에 매각돼야 한다고 고지하지 않았다. 이런 부주의가 위험 유발의 책임이 있는지 정식재판을 통해 가려봐야 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산재의 책임을 원청에 묻는 것조차 까다로운 한국의 시각으로는 산재 노동자와 국적마저 다른 중개업체의 책임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판결이 기이할 따름이다.

거대 기업의 책무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해보는 장기 재판은 이외에도 더 있다. 나이지리아의 한 마을은 영국의 석유기업 Shell의 자회사가 석유 유출로 환경오염을 일으켰다며 모회사를 상대로 영국법원에 집단소송을 걸었고, 잠비아의 한 마을은 영국의 광산기업 Vedanta의 자회사가 독성물질을 방출했다며 역시 영국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두 사건의 모회사들은 자회사가 독립법인이라며 기각을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별개의 법인이라도 모회사의 책임이 자동 면책되지는 않는다며 소송을 진행토록 판결했다.

영국뿐 아니라 근래 OECD 주요국에선 최종 책임자로서 원청이나 모회사를 지목하는 판결 및 법안이 속속 등장해왔다. 2024년 유럽의회는 아예 유럽 단위의 통일된 법안을 의결했고, 각 회원국은 2026년까지 상응하는 국내법을 제정해야 한다.

CSDDD, 우리말로 ‘기업의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으로 불리는 이 규정에 따르면 일정 기준을 충족한 모회사 또는 원청기업은 자사는 물론 자회사와 협력사까지 인권 및 환경 지침을 준수하는지 실사하고 공시해야 한다. 마치 확장된 중대재해처벌법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지침을 어길 시엔 순매출액의 최대 5%에 달하는 과태료 및 사업배제 등의 강력한 조치가 취해진다. 한국의 다수 대기업이 CSDDD에 따른 실사 의무를 질 것으로 예상되기에 재계는 혹시 모를 제재를 피하기 위해 대비 중이다.

최근 일명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었다. 재계와 야당, 보수언론에선 저급한 공포 마케팅도 마다않고 총력 저지에 나선 바 있다. 주된 반대 이유 중 하나는 원하청은 별개의 회사인데 교섭한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OECD 국가는 초기업적 단체협상을 통해 하청 노동자와 원청이 간접적이되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교섭을 진행한다. 또한 앞서 살펴보았듯 원청과 하청이 개별 기업일지라도 하청에 대한 원청의 책무가 단순 근로조건을 넘어 확장되고 강화되는 게 글로벌 시장의 대세이다.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격렬한 반발에서 심히 볼썽사나웠던 대목은 원청의 책무가 한층 강화되는 유럽의 새로운 규제에 한국 기업이 충실히 적응해야 한다던 재계와 보수언론이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는 기업 죽이는 법이라고 악다구니를 썼다는 점이다. 3년 전 시행되었던 중대재해처벌법 때도 그렇고 자국민 노동자를 가장 업신여기는 듯한 한국의 보수는 이런 면에선 통상의 극우와는 실로 거리가 멀다.

/장제우 작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