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구문화재단 공동기획>
한국전쟁으로 타격 받고 방치… ‘수출산업공단’ 재기
1930년대 후반 일제 군수기지 추진
전후 인천항 개발 집중 ‘지원 저조’
1970년대 최적 교통망으로 급성장
산단 50개 기업 인천 수출 42%나
100년 전 수도권의 대표적 농업 지역이었던 부평은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인천의 산업 중심지로 성장했다. 서울과 인천항 사이 드넓은 평야에 자동차를 비롯해 철강, 기계 등 중화학공업이 발달하면서 인천과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부평이 ‘공업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1930년대 후반이다.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해 중일전쟁(1937년)을 일으키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인천을 군수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계획이 추진됐다. 1934년 당시 경성과 인천의 중간지역에 1천만평(3천305만여㎡)에 달하는 공업용지가 조성됐는데, 현재의 부평과 계양지역을 비롯해 서울 구로·양천 일대, 경기 시흥·부천(소사) 일대 등에 전기와 가스를 공급하는 공업 기반시설이 갖춰졌다.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부평고등학교 위치에 도쿄자동차공업 주식회사가 ‘조선제조소’라는 이름의 자동차 부품·조립공장을 설립했다. 또 지금의 산곡동·청천동 지역에는 베어링을 생산하는 고요정공 부평공장, 수도용 강관을 생산하는 경성공작주식회사, 기계 등을 생산하는 홍중상공주식회사 부평공장 등도 들어섰다.
이전까지 인천의 공업은 인천항을 중심으로 정미업이나 제분업 등 이른바 농업에서 파생된 식료품공업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현재 현대제철과 HD현대인프라코어가 위치한 동구 화수동 일대와 함께 부평이 제조업을 이끄는 선도도시 역할을 했다. 1939년 일본육군조병창이 지금의 부평1동과 산곡동 일대에 자리한 것도 부평의 제조업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제의 패망으로 찾아온 해방은 부평의 산업 발전에는 역설적으로 악영향을 미쳤다. 일본인들이 관리·감독하던 대규모 군수공장을 가동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1950년 한국전쟁으로 부평의 공업시설도 타격을 입었는데, 전후 인천지역의 산업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부평공업지대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인천항을 중심으로 복구와 개발이 집중되면서 부평 일대는 오랜 기간 방치됐다.
부평의 제조산업이 재기하게 된 시기는 1965년이다. 당시 정부가 수출산업공단 조성계획을 추진하면서 일제강점기 시절 형성된 경인지역 공업지대를 후보군으로 물색했다. 인천상공회의소는 부평지구에 수출산업공단 유치를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1964년 10월 구로동 일대(현재 구로디지털단지)가 선정되면서 고배를 마셨다. 인천시와 인천상의 등 경제계가 나서 정부에 부평을 별도의 공업지대로 지정해줄 것을 건의했고, 1965년 6월 ‘인천수출산업공단’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지정됐다. 인천수출산업공단은 이후 한국국가수출산업단지 4단지, 일명 부평국가산업단지로 명칭이 바뀌어 현재에 이르게 된다.
부평국가산단은 1970년대 들어 최적의 교통망을 배후에 두고 급성장하기 시작한다. 산단 준공에 앞서 1968년 개통한 경인고속도로가 100m 이내에 인접해 있고, 부평역과 3㎞, 인천항과 30㎞, 김포공항과 11㎞ 떨어져 있어 원자재·제품 수출에 최적이었다. 1970년 부평산단에 입주한 50개 기업의 수출 실적은 인천 전체 수출액의 42.5%를 차지했다. 산단이 준공되기 직전인 1968년 당시 부평의 수출액이 인천 총 수출액의 3.5%에 불과했는데, 한국 경제가 고도 성장기로 진입할 무렵 부평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음을 입증한 셈이다. 한국지엠의 전신인 신진자동차를 비롯해 한국베어링, 일진금속 등의 공장이 있었고, 삼익악기도 이곳에서 성장했다. 부평역 일대 상권이 발달하고 인구가 늘어나는 등 ‘자족 도시’의 모습을 갖춘 것도 이 시기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고성장이 점차 둔화하고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부평의 모습도 변화하게 된다. 한국지엠 부평공장과 부평국가산단을 제외한 공장들은 대부분 철거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비용이 늘면서 기업들이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고, 1997년 IMF 사태로 대우자동차를 비롯한 인천지역 대우그룹 계열사가 휘청이자 지역 중소기업들도 하나둘 문을 닫은 결과다. 한때 60만명을 바라봤던 부평의 인구도 산업 쇠퇴와 함께 50만명 아래로 줄었다. 올해로 지정 60년을 맞은 부평국가산단의 신성장 동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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