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고(故) 김학찬의 유고 소설집·산문집 출간

 

“하루가 지났다, 하루만큼… 나아졌다”

‘투암기’의 마지막 글… 42세에 마침표

청년시절 쓴 ‘구름기’, 변두리 삶 그려

2025년 2월, 42세의 짧은 일기로 세상을 떠난 소설가 김학찬의 유고 소설집과 산문집이 나란히 출간됐다.

김학찬 유고 소설집 ‘구름기’는 작가의 미발표작을 포함해 청년 시절 썼지만, 책으로 묶지 않았던 작품과 2023년 펴낸 첫 소설집 ‘사소한 취향’ 이후 썼던 최근작들을 모았다. 산문집 ‘투암기’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기침으로 병원에 들렀다가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제목을 먼저 정한 후 써내려간 산문이다.

■ 투암기┃김학찬 지음. 교유서가 펴냄. 312쪽. 1만7천원

‘투암기’ 표지.
‘투암기’ 표지.

‘투암기’는 미완의 산문이다. 이 책은 작가가 좋아했던 하루키의 에세이처럼 작가 자신을 항암제의 이름을 딴 ‘렉라자맨’이라 지칭하며 담담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글발을 살린 1부(‘의연해야지. 하지만 울고 있었다.’)와 “아마도, 마지막이 될 글을 계속해서 쓴다”라고 시작하며 조금 더 내면으로 침잠하는 2부(‘작가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소설가가 되었으니-조금 더, 글을 쓰다 떠나겠다’)로 나뉜다. 작가는 병세가 급격히 깊어지면서 끝내 글을 멈췄다고 하는데, 그 흔적은 ‘투암기’ 2부 마지막에서 찾을 수 있다.

“하루가 지났다. 하루만큼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몇 년 동안 이어졌지만 매일 슬펐던 것은 아니다. 나를 잃는 슬픔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 몇 시간 정도는 마음이 나아진다. 의욕이나 희망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원래도 의욕 같은 단어는 좋아하지 않았다) 마냥 침묵하는 것도 지겹다. 아침 일찍 아내와 같이 성북동에 있는 빵집에 갔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빵으로 식사를 했다(다음에는 역시 먹던 빵을 사야겠다).” (‘투암기’ 268쪽)

책을 출간한 교유서가의 설명처럼, “자신의 처지를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 덤덤한 적극성”(창비장편소설상 심사평)은 유고 산문집에서도 두드러진다. 작가가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일상의 사소한 풍경과 사랑, 가족, 그리고 ‘살아 있음’의 의미를 그려냈다.

■ 구름기┃김학찬 지음. 교유서가 펴냄. 284쪽. 1만7천원

‘구름기’ 표지.
‘구름기’ 표지.

소설집 ‘구름기’는 10편의 단편을 통해 이 세계에서 비켜나간 존재들, 실향민과 이방인, 체제의 변두리에서 밀려난 자들의 삶을 예민하게 포착했다. 동시에 그런 인물들을 그려내는 행위 자체의 한계를 뼈아프게 직시한다.

고향을 떠나왔으되 아직 새로운 터전에 완전히 스며들지 못한 새터민 가족(‘귀가’), 자본주의의 문법을 체득하지 못한 채 체제 밖을 배회하는 아버지들(‘은이와 같이’ ‘구름기’), 냉철한 리얼리즘을 기치로 내걸지만 현실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데 번번이 실패하는 화자(‘미당시문학관’)가 바로 그들이라 할 수 있다.

김학찬의 유고집을 읽은 많은 이들이 ‘투암기’를 먼저 읽고, 그 다음 ‘구름기’를 읽길 추천하고 있다. 집필 시점상 역순으로 보이나, 삶의 끝자락에서 의연하면서도 치열하게 고아낸 작가의 사유와 성찰을 그가 앞서 써낸 소설들에 투영해 볼 때, 작가가 응시했던 세계가 오롯이 드러나는 듯하다.

표제작 ‘구름기’에서 주인공 ‘나’의 입을 빌려 작가는 이렇게 썼다.

“구강기(口腔期)나 항문기(肛門期)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구름기(期)가 있대. 구름 위에 올라탈 수 있다는 마음, 구름 위 세상을 받아들이는 믿음, 구름보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을 모르던 때를 구름기라고 부른대. (중략) 참, 여보, 신기한 거 하나 알려줄까? 진짜 구름은, 얼룩이 있어야 해. 어두운 부분이 있어야 하얀 구름이 몽실하게 보이지 않겠어?” (‘구름기’ 173쪽)

김학찬 작가는 1983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2013년 장편소설 ‘풀빵이 어때서?’로 제6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이후 ‘상큼하진 않지만’(문학동네), ‘굿 이브닝 펭귄’(다산책방), 소설집 ‘사소한 취향’(교유서가) 등을 썼다. 전태일문학상, 최명희청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