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다시 찾은 베트남 꾸이년
단골 과일가게와 쌀국수 아주머니
바람 부는 연리 바다의 평화로움
자연의 리듬 스며들어 행복 느껴
여덟 번 더 와서 새 책 준비했으면
작년에 갔던 베트남 꾸이년에 다시 가기로 결정한 것은 지난 여름의 기억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긴 해변을 가지고 있는 이 도시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따뜻하다. 외국인보다 자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오는 곳이고, 특히 9월2일 독립기념일 즈음에는 인파가 절정을 이루는 것 같다. 작년에도 일을 잔뜩 끼고 갔는데 단편소설 하나, 장편소설 교정보기, 칼럼 쓰기 등 하려던 일을 모두 수월하게 해내고 왔다. 올해도 비슷한 보따리를 꾸린다. 단편소설 하나, 네 번째 창작집 교정보기, 칼럼 쓰기 말이다. 베트남 카공족과 여행객 모드를 반반 섞어서,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물에 들어가는 시간은 여름을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보내는 방식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언제든 가면 집중이 잘 되는 카페 아드밧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허구한 날 가다보니 카페 사장 가족 전체와 친해지다 못해 2박 3일 여행까지 같이 다녀온 전력이 있다. 차 한 대에 두 식구가 끼어 타고 중부 산간 당락 지역의 커피 농장을 방문하는 동안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잘 통하는 경험을 했다. 작년에는 너무 일방적으로 호의를 받기만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선물을 바리바리 싸갔다. 부모님을 위한 홍삼, 아빠를 위한 한국 전통주, 엄마를 위한 화장품, 딸을 위한 책가방 뭐 이런 식으로. 짐 보따리 하나가 선물로 가득 차자 친척집에 가는 느낌이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꾸이년은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행정구역이 빈딘성에서 쟈라이로 바뀌고, 전기차가 대대적으로 보급되어 거리에 차가 늘었고, 우리의 아지트인 아드밧 카페는 옆 건물을 사서 확장 공사를 했다. 아드밧 이층에 자리를 잡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우리만의 작은 소우주에 도착한 느낌, 이 공간과 나만의 회로에 전기가 다시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노주현’이라고 별명을 붙인 단골 중년 신사가 여전히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와 있고, 우리가 ‘주윤발’이라고 별명을 붙인 잘생긴 카페 스태프가 주문을 받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80주년을 맞는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붉은 깃발이 수도 없이 펄럭이고, 밝고 환한 차림의 도시의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것이 보였다.
단골 과일가게 아주머니도 우리를 기억했고, 쌀국수 아주머니도 반겨주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 끼어 바다와 글쓰기, 커피와 쌀국수, 가족과의 시간과 나 혼자만의 시간을 오가며 삼 주를 보냈다. 이 임시의 삶에는 모든 것이 간소해져서 필수품만 남고 나머지는 싹 빠져버린 듯한 담백함이 있다.
두 번째 방문이다 보니 길도 얼추 알고 있는 가운데 전에 가지 못한 곳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하는 기쁨이 있다. 이번에는 차를 타고 나가 해안 절벽 트레킹도 하고, 역시 두 가족이 함께 2박 3일 플레이꾸라는 새로운 지역도 여행하고 돌아왔다. 작년에 못 간 봉추아산 정상도 가고 강에서 보트도 탔다. 동트기 전부터 부지런히 바다에 나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여전했다.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삼십분 정도 달려가면 나오는, 바람이 많이 부는 연리 바다의 평화로움도 그대로였다. 이 초록색 바다에 둥둥 떠 있으면 일종의 삼투압 현상처럼, 내부의 불안과 혼란이 빠져나가고 자연의 리듬이 가만히 스며드는 듯하다. 나는 이 고장과 나 사이의 느슨한 연결을, 그리고 장소에 대해 생겨나는 애착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평화로운 행복을 느꼈다.
좋은 순간이면 더 길게 늘려볼 꿈을 꾸는 것이 나의 특징이다. 떠나기 전날 망고를 먹으면서 이제 두 번 왔으니 앞으로 여덟 번을 더 여름마다 이곳에 와서 새 책을 준비하고 바다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혼자 해본다. 그러면 열 두 살인 내 딸은 스무 살이 될 것이고, 나는 앞선 두 권을 더해 열 권의 책을 가질 수 있겠지? 물론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기’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십년짜리 구상은 치밀한 계획이라기보다 미래에 띄우는 희망의 작은 깃발에 가깝다. 미래의 여름을 향해 작은 깃발을 흔들며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참 좋겠지.’ 장래희망을 품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여전히 가능하니까.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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