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고 때리니 단단해졌다… 60년 한길, 대장장이의 눈빛처럼
16살 어린나이 대장간 들어가
전국 돌며 쇠·열기에 삶 바쳐
단단함·예리함 겸비 ‘좌전칼’
손맛과 용도 맞춰 제작 해줘
전국 시장서 찾는 사람 많아
김윤후·이순신 장군 칼 재현
박물관에 기증 하고 싶어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작은 마을의 한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연기를 따라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보면, 보는 사람의 기를 단 번에 제압해 버리는, 큼지막이 붉은 글씨의 ‘칼’이라고 새겨진 대장간이 보인다. 낮은 담벼락 너머로 쇳소리와 망치질 소리가 번지는 곳, 이곳은 바로 김영환 장인의 작업실이다. 김 장인은 60년간 오로지 쇠를 두드리며 수제 무쇠 칼을 만든 베테랑 대장장이다.
대장간에 들어서자 거친 쇠 냄새와 그와 함께 오랜 세월을 보낸 화로·모루 등 빛바랜 장비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작업실 한편에는 아직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철재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그의 나이 올해로 일흔일곱. 60년간 쇠를 벗삼아 살아온 그는 매일 아침 자신의 작업실에 불을 지피며 하루를 시작한다. 무더위의 끝자락, 김 장인과 쇠의 치열한 씨름이 시작된다. 그는 섭씨 1천600도까지 올라간 화로에서 붉게 타오르는 쇳덩이를 꺼내 망치로 힘껏 내려친다. 망치가 쇠에 부딪칠 때마다 그의 땀방울이 섞인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알맞게 익은 쇳덩이를 망치로 두들겨 판판하게 다듬고 작두로 잘라 형태를 만든다. 잘라낸 쇳덩이를 다시 달군 뒤 칼 모양으로 재단하고, 칼의 형상이 드러날 때까지 쉼 없이 평탄 작업이 이어진다. 칼날을 세우기 위해 연마기에 부지런히 갈다 보면 어느새 은백색의 날카로운 날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쇠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열처리를 거친 뒤 손잡이를 결합하면 ‘좌전칼’ 한 자루가 완성된다. 좌전칼은 김 장인이 직접 고안한 칼이다. 젊은 시절 전국 각지로 대장간을 다니며 기술을 익혀 단단함과 예리함을 겸비한 자신만의 칼을 완성했다. “좌전칼은 제 혼을 담아서 만든 칼입니다.” 김 장인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김영환 장인은 열여섯 살 때 처음 대장간 일을 배웠다.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어린 나이에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보리밥 먹기도 버거운 시절 배부르게 먹게 해주겠다던 동네 아저씨를 따라 대장간에 들어섰다.
대장간 아저씨를 따라 나선 어린 소년은 전국의 대장간들을 돌며 쇠와 열기에 삶을 바쳤다. 어린 시절부터 마주한 고된 현실은 그의 삶을 단단하게 벼려냈다. 쇠가 뜨거운 불에 달궈지고 수없이 망치질을 거쳐 비로소 단단한 칼이 되듯 그의 인생도 그렇게 단련됐다.
그의 인생이 담긴 좌전칼은 전국 각지에서 인정받고 있다. 좌전칼은 1㎏, 850g, 700g 등 크기와 무게가 다양해 사용하는 이의 손맛과 용도에 맞춰 제작된다. 덕분에 경기도는 물론 전국의 수산시장에서 그의 좌전칼을 찾는 이들이 많다. “40~50년 동안 찾아주시는 단골들 덕분에 제가 살고, 그분들이 좋아하시니 그 맛에 사는 거죠”라며 은은한 미소를 짓는 김 장인.
앞으로 그는 좌전칼뿐 아니라 용인 처인성의 김윤후 장군과 이순신 장군의 칼을 재현해 작품성이 담긴 칼을 만들어 박물관에 기증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힘이 닿는 데까지 대장장이로서 칼을 만들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