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역사 담긴 양키시장
이북 돌아가지 못했던 ‘맨몸’ 피란민들
가게 특정할 수 없게 간판 안 달고 장사
밀수 상인들 고향 별명으로 대신 불러
오성극장 나서 주택 10여채 무허가 조성
공동화장실도… 시장위 주택 전국 유일
미제 공급 최적지… 평화·자유 명칭도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미군부대 등에서 흘러나온 밀수품을 내다 팔며 형성된 양키시장은 인천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는 공간이다. 양키시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공간적 위치에서부터 업종, 건축 구조, 상점 간판 등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많은 것들에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상 등이 담겨 있다. 한때 극장까지 입점해 있는 지금의 ‘복합쇼핑몰’과 같은 기능을 했던 양키시장은 동인천 일대 개발 사업을 앞두고 지난 6월 모든 점포가 문을 닫았다. 시장 철거 후에는 이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가, 공원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70여년 세월 인천 사람들과 애환을 같이 했던 양키시장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아봤다.
■ 가게 간판을 달지 않은 양키시장 상인들
과거 양키시장 상인들은 부평 미군부대와 인천항 등에서 흘러나온 물품들을 훔치거나 불법 거래상을 통해 유통받아 장사를 해왔다. 한국전쟁 직후 고향인 북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맨몸으로 인천에 정착한 피란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택한 길이기도 했다.
맨바닥에 보자기를 깔고 장사를 시작했던 양키시장 상인들은 이후 좌판이 만들어지고 별도의 판매구역까지 생겨 그럴듯한 재래시장의 모습을 갖춘 후에도 일부러 간판을 내걸지 않고 장사를 이어왔다고 한다. 밀수품을 판매하는 특성상 간판이 없어야 단속반이 가게를 특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국 상품이 불법으로 유통된 만큼 양키시장에서는 수시로 관계 기관의 단속이 이어졌다.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상인들은 순식간에 물건을 숨기거나 장사를 멈추고 도망가야 했다. 양키시장의 또 다른 별칭인 ‘도깨비시장’도 이런 이유에서 붙여졌다.
간판이 없다 보니 상인들은 서로의 가게에 별명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똘똘사’, ‘키다리네’, ‘은정이네’, ‘경자네’ 등 양키시장 가게 이름들이 대부분 이런 구조로 돼 있는 것도 밀수품 판매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평양수선집’ ‘황해사’ 등 일부 간판에는 피란민 출신 상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담겨있다.
■ 시장 지붕 위에 들어선 주택들
양키시장에는 다른 지역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건축 공법이 적용된 공간이 있다. 오성극장이 지어지기 전, 양키시장에는 슬레이트 지붕만 존재했다. 오성극장을 건축한 사업자는 슬레이트 지붕 위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운 뒤 극장과 함께 주택 10여 채를 짓겠다고 제안했고 상인들은 이를 수용했다. 이렇게 해서 시장 상층부에 ‘시장주택’이 형성됐다.
시장주택은 현재도 남아 있다. 양키시장 내부에서 연결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양 옆으로 주택 여러 채가 줄지어 들어서 있고 집집마다 대문도 달려 있다. 주택 내부는 부엌과 방 2개, 화장실 등으로 구성됐다. 과거에는 화장실 없이 양키시장의 공동 화장실을 이용했는데, 리모델링 등을 거쳐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일부 주택은 창문을 열면 오성극장 스크린 방향의 외벽이 보인다. 무허가(불법)로 조성된 주택이지만 이곳엔 꽤 오랜 기간 사람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유동현 전 인천시립박물관장은 “사람들이 양키시장과 연결된 계단을 오르내리며 출퇴근하고 학교를 가면서 삶을 살았다. 이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어놀았다는 것이 상상이 되느냐”며 “이렇게 시장의 천장, 시장 바로 위에 주택가와 골목이 조성된 경우는 국내에서 아마 양키시장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양키시장은 왜 동인천역 주변에 형성됐을까
인천의 대표적 구도심 지역인 동구 송현동 100번지 일원, 경인전철 동인천역 북광장 일대에 형성된 양키시장의 시초는 1930년대 조성된 ‘송현일용품시장’이었다. 전쟁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이곳에 한국전쟁 직후 피란민이 모여들면서 다시 상권이 형성됐다.
1945년 해방 이후 인천 부평에는 미군부대가 자리잡았다. 당시 미군은 인천항을 통해 막대한 군수품과 식량 등 물자를 보급받았다. 양키시장이 위치한 동인천 일대는 인천항과 근접해 있다. 양키시장 상인들이 미군부대와 인천항에서 유출되는 다양한 미제 상품을 공급받는 데 지리적으로 적합했다는 것이다.
1965년 정식 시장으로 등록된 양키시장의 공식 명칭은 ‘송현자유시장’이다. 한국전쟁 이후 조성된 시장들은 평화와 자유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평화시장’, ‘자유시장’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양키시장은 송현동에 조성된 시장이었기에 ‘송현자유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