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시장 어르신들 ‘삶과 추억 보상’ 보람 느껴”

어린시절 대부분 보낸 곳 “기억 생생”

‘양복점 운영’ 아버지 통해 역할 맡아

상인들 노후 보장… 감사인사에 뿌듯

신광철 (주)중앙상사 대표는 “상인들이 살아계실 때 양키시장을 떠나 온전한 인생을 누릴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5.9.23 /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신광철 (주)중앙상사 대표는 “상인들이 살아계실 때 양키시장을 떠나 온전한 인생을 누릴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5.9.23 /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양키시장(송현자유시장)은 1990년대 이전의 모습에서 시간이 멈춘 곳이에요.”

신광철 (주)중앙상사 대표는 “양키시장은 상인들의 치열했던 삶의 터전이자 추억이 담긴 곳”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중앙상사 주식회사’는 송현자유시장이 정식 시장으로 등록되면서 설립됐다. 상인들이 주주로 지분을 소유한 뒤 영업을 이어오는 형태로 시장이 유지됐다.

불법 건축물(증축)에 대한 단속 개념이 없었던 시절, 양키시장 상인들은 점포 2~3층에 살림집을 지어 자식들을 낳고 키웠다. 생활터전이었던 그 흔적들은 여전히 양키시장에 남아있다. 신 대표는 어린시절 대부분을 양키시장에서 보낸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양키시장에서 가게를 하는 상인(부모)들은 모두 바빠 자녀들끼리 모여서 놀았다”며 “어린 시절 학교 다녀와서 다른 가게 형들과 시간을 보내다 가게 2층에 있는 집에서 먹고 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했다.

1950년대 6·25 한국전쟁 이후 조성된 양키시장은 국내에선 볼 수 없던 미제 상품을 향유할 수 있는 시장으로서 1990년대까지 번영을 누렸다. 맞춤 양복과 교복, 작업복, 수선 제품 등이 양키시장의 주력 상품으로 떠오르며 양복점 거리가 생기기도 했다.

신 대표는 아버지를 통해 중앙상사와 연을 맺었다. 신 대표의 아버지는 1963년부터 최근까지 양키시장에서 ‘우정양복점’을 운영했다. 30년 은행 근무 경력이 있는 신 대표가 연로한 양키시장 상인들을 대신해 양키시장 보상 협상에 참여했다.

1990년대까지 번영을 누렸던 양키시장은 미제 상품의 주요 유통 통로였던 미군부대 이전과 더불어 유통환경의 변화, 상권 노후화, 인현동 화재 참사 등의 여파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이후 개발·보상 계획이 십수년간 무산되다 최근 양키시장을 대상으로 우선 보상이 확정됐다.

신 대표는 “보상 협상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면서도 “상인들이 살아계실 때 보상절차가 마무리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모님 세대 상인분들은 양키시장에서 고생만 하고 본인들의 인생을 살아보질 못했다. 노후라는 개념도 없었을 것”이라며 “70~80대 노인들이 보상을 받은 비용으로 남은 인생을 살겠다며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니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