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 태어나 문학적 성채 이룬
선배들 공과 학술행사처럼 진행
올해는 25년생 소띠 대상 치러져
등장할 납월북문인들 이제 없어
월남작가 앞으로 범위 넓혀갈 듯
2001년부터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가 함께 주최해온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가 올해로 25회를 맞았다. 여기서 ‘문학인’이란 시인, 소설가, 극작가, 비평가, 수필가, 아동문학가 등 여러 장르에 헌신한 문필가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첫 해에 1901년생 김동환, 박영희, 박종화, 심훈, 이상화, 최서해 등을 다룬 이래 이 행사는 근대문학의 성좌들을 학문적·대중적으로 발굴하고 해석하고 대중화하는 문학사적 검토의 대표적 현장이 되어주었다. 불가피하게 1901년 이전 태생들은 이 행사에 초대받지 못했다. 이인직, 이해조, 한용운, 신채호, 홍명희, 최남선, 이광수, 조명희, 이기영, 김억, 김동인, 한설야, 주요한 등이 그러했다. 그리고 제도권 내에서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납월북문인들이 폭넓게 알려지게 된 것도 문학제의 크나큰 성과였다. 정지용, 송영, 최명익, 이태준, 박팔양, 박세영, 김기림, 임화, 이원조, 박태원, 이찬, 허준, 안막, 이북명, 안함광, 김남천, 설정식, 백석, 조명암, 이용악, 김사량, 함세덕, 안용만, 최석두, 오장환 등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행사 때마다 우리는 한국 근대문학의 척박한 토양 위에 한국어의 외로운 빛을 던졌던 그들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 뒷모습을 때로 외경으로 때로 연민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 맥락에서 누구는 북을 택한 이유로 누구는 제국에 협력한 이유로 문학 외적 평가에 노출되기도 했고, 유족들이 적극 참여하여 고인의 생애를 증언하고 추모하는 성격도 부가되어 많은 이들에게 공감적 친화력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또한 문학제는 최근으로 올수록 심포지엄 외에도 공연이나 전시를 수반함으로써 문학인들을 재탄생시키는 융합적 조명을 시도하여 대중적 접근성을 한층 더 높여가기도 했다.
필자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 때 대산문화재단의 후의로 ‘2017 대학생 동북아 대장정’에 지도교수로 참여하였다. 이때 윤동주와 동갑인 대산 신용호 선생의 유적을 함께 돌아볼 수 있어서 더욱 뜻이 깊었다. 이처럼 백 년 전 태어나 불우한 민족 현실을 딛고 문학적 성채를 이루어낸 선배들의 공과(功過)를 때로 학술행사처럼 때로 축제처럼 치러온 이 행사가 ‘탄생 100주년’이라는 빛을 지상에 쏘아온 지 벌써 사반세기를 맞은 것이다. 요절 문인이 특히 많았던 근대 100년을 넘어 이제 평균 수명도 늘어나게 되었으니, 앞으로 생존 문인이 자신의 탄생 100주년 행사에 직접 나오시어 추모가 아닌 회고를 하시게 될 날도 생겨나지 않을까 기다려본다.
한 가지 강조되어야 할 것은, 앞으로 이 행사에 등장할 납월북문인들은 이제 없다는 점이다. 오장환을 하한선으로 하여 일제시대에 활동하다 북으로 간 문인은 이제 더 이상 없는 셈이다. 반면 월남작가들은 앞으로도 차례차례 전봉건, 김광림, 한하운, 이호철, 장용학, 선우휘, 최인훈 등으로 그 범위를 넓혀갈 것이다. 이는 납월북문인들이 당시 중진 내지는 중견들로 확고한 작가적 위상을 가진 채 북으로 간 반면, 월남작가들은 당시 소장파였거나 월남한 후에 비로소 문학을 시작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남과 북의 문학사는 비대칭적으로 펼쳐졌다.
지난 9월19일 치러진 올해 행사는 시인 김규동, 박용래, 홍윤숙, 아동문학가 어효선, 이오덕 등 25년생 소띠 문학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순조롭게 잘 치러졌다. 전후문학의 자장 위에 놓일 수밖에 없는 다섯 분이 각각의 개성으로 클로즈업된 것이다. 이분들은 해방이 되자 성년을 맞았고 그 성년의 빛으로 분단 이후 한국문학의 주춧돌을 놓았다. 이들로부터 시작된 전후문학사는 전쟁으로 인한 상흔과 이념적 배타성을 한 축으로 삼고, 실존적 내면의 불안을 또 다른 축으로 하여 전개되어갔다. 이번 행사에서 기념한 문학인들의 자취는 이러한 지형 안에서 생성되고 천천히 번져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오래도록 쌓아서 한국문학의 호환할 수 없는 기둥이 되어준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가 벌써 25회를 맞았다니, 어쩌면 기념문학제 자체를 기념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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