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입담꾼·만방의 싸움꾼이 與 대표로

대학 신입생때 밝힌 꿈, 대통령감까지 거론

좁힌 대권만큼 팔짱 낀 이들도 등에 업어야

성난 등판, 현재 권력에도 부담 될 수 있어

이충환 언론학 박사·객원논설위원
이충환 언론학 박사·객원논설위원

정청래는 타고 난 입담꾼이다. 오죽했으면 보좌관이 “말하고자 하는 욕망에 가득 찬 사람”이라고 했을까. 말 잘하는 정치인으로서 그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 건 2016년 2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벌어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때다.

의장이 법안을 직권상정하자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의사진행 방해 연설에 들어갔다. 2016년 2월23일 오후 7시5분에 시작된 필리버스터는 달을 넘겨 3월2일 오후 7시32분에 끝났다. 무려 192시간 27분의 대장정.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최장 발언자는 12시간31분의 이종걸 의원이었다. 하지만 속기록 분량으론 정청래 의원이 앞섰다. 11시간39분 동안 빠른 속도로, 지치지 않고, 법안의 위험성을 또박또박 짚어나갔다. 정청래의 자랑 중 하나다.

정청래는 타고난 싸움꾼이다. 마흔다섯 나이에 가진 열 번째 자식을 지우기 위해 어머니는 두 번이나 병원을 찾으셨다. 그런데 뱃속의 아기가 너무 기운차고 활발하게 놀아서 차마 못 떼고 돌아섰다는 얘기다. 그는 “뱃속에서 살려달라고 발버둥친 나의 생존권 투쟁이 결실을 보게 되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고 했다.

그 시절을 살아봐서 알지만 한 번 끌려갔다 나오면 한동안 전의(戰意)를 상실하게 된다. 속내가 입은 데미지가 작지 않다. 그런데 그는 안기부에서 고문과 폭행을 당한 지 1년 만에 주한미국대사 관저를 점거한다. 1989년 10월13일, 동료 학생들과 함께 관저의 담을 뛰어넘었다. 방화를 시도했고, 사제 폭탄을 던졌다. 훗날 정계 진출의 발판이 된 사건이다. 태중(胎中)에서부터 길러진 투쟁 기질이 작용했음 직하다.

2004년 초선 때부터 정청래는 같은 당 유시민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시작으로 파이터의 본색을 드러낸다. 이후 박영선, 김무성, 강기정, 나경원, 박지원, 안철수, 오세훈, 홍준표 등 같은 당 남의 당 가리지 않고 내로라하는 덩치들과 싸움을 벌였다. 수틀리면 참질 못했다.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2018년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와 서울·경기 공공개발 정책을 둘러싸고 충돌하기도 했다. ‘모두까기’라는 별칭이 붙은 까닭이다.

당의 주력 화포들을 불발탄 제조기로 만들어버리곤 하던 윤석열 정부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대정부질문을 하면서 “장관은 참기름, 들기름 안 먹고 아주까리기름 먹어요? 왜 이렇게 깐죽대요?”라고 퉁을 놨다. 법사위원장을 하면서는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을 속된 말로 갖고 놀았다. 강성 지지자들에겐 해소였고, 위무였다. ‘개딸’들이 환호했다. 덕분에 천하의 입담꾼, 만방의 싸움꾼 정청래가 이제 여당 대표가 됐다. 당장 “악수도 사람과 하는 것”이라며 국민의힘과의 악수를 거부했다. 추동하는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답례였다.

앗! 드디어 정청래가 차기 대통령감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지난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다. 대학 신입생 때 과대표 선거에서 밝힌 ‘꿈’에 한 걸음 성큼 다가선 느낌일 것이다. 지금부터가 진짜 중요하다. 그 꿈을 이루려면 좁힌 대권과의 거리만큼이나 뒤로 물러나서 팔짱 끼고 지켜보는 이들도 등에 업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엔 지금 그의 등이 너무 좁고 가파르다. 저토록 성난 등판으로 민심을 어떻게 온전히 업을 수 있을까. 어느 단계까지는 개딸들이 보위했던 전례의 ‘이재명 모델’이 유효하겠지만 다음 수순에도 똑같이 작동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정청래의 성난 등판은 현재 권력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강온(强穩)의 절묘한 역할 나누기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당정갈등을 빗대는 ‘명청대전’도 벌써 그럴싸하게 들린다. 일단은 김민석과 우상호, 그리고 조국까지도 가세할 미래 권력의 라인업에 들어가야 한다. 현재의 방식으론 그게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설악산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은 칼날의 멋짐이 있다. 하지만 그 예리한 날 위에 꽃은 무리를 짓지 못한다. 지리산 바래봉 능선과 노고단 능선은 밋밋하고 둔하다. 하지만 계절을 돌아가면서 철쭉과 원추리와 억새를 무장무장 피워내 기어코 군락을 이루게 한다. 정청래의 선택이다.

/이충환 언론학 박사·객원논설위원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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