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차례 교섭끝 서명 남기고 돌변
출근 막고 임금 중단 사측 초강수
“모회사 사모펀드, 비용절감 매몰”
“추석을 앞두고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회사를 이렇게 닫아버리다니 이해가 안 됩니다. 교섭에도 안 나오더니 일방적으로 직장폐쇄라니요.”
24일 오전 찾은 안산시 반월시화공단에 위치한 산업폐기물처리업체 ‘비노텍’. 평소 폐기물을 실은 차량이 드나들던 진입로는 한산했고 공장 가동은 멈춘 상태였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 김현석(50)씨는 “하루에도 수십 톤씩 밀려드는 폐기물을 처리하려면 고강도의 노동을 버텨야 한다”며 “임금 인상과 복리후생 개선 요구는 최소한의 조건이었는데 사측은 끝내 귀를 닫았다”고 토로했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한 달째, 경기도 내에서 노사갈등 끝에 직장폐쇄 조치가 단행되는 일이 벌어졌다. 싱가포르 사모펀드가 지분을 보유한 비노텍에서 노사 간 교섭이 장기 교착에 빠지자 사측은 돌연 직장폐쇄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표이사가 협상에 불참하면서 ‘잠적 의혹’까지 불거진 상황이다.
직장폐쇄는 사용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응 수단으로, 노동자들의 출근을 원천 차단하고 임금 지급도 중단된다. 사실상 협상의 장을 일방적으로 닫아버리는 조치라는 점에서 노동권 침해와 교섭력 불균형 심화를 동반한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통상 임단협은 해마다 반복되는 절차지만 올해 교섭은 달랐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조율 끝에 노조는 임금 4% 인상과 복리후생 개선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2%대 인상안을 고수했다. 이에 노조는 지난 7월6일 파업에 나섰으나, 이후에도 대표이사가 교섭에 임하지 않으면서 장기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에 박해철(민·안산병) 국회 환경노동위원과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등이 중재에 나섰지만 20차례 넘는 교섭에도 성과가 없었다. 지난 15일에는 잠정합의안이 마련됐지만, 대표이사가 “이틀만 시간을 달라”며 서명을 미루더니 병원에 입원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이후 노조가 부분 복귀 의사를 알린 상태에서 사측은 직장폐쇄 공문을 발송, 지난 23일 오전 6시부터 사업장이 봉쇄됐다.
이런 교착 뒤에는 사모펀드 지배 구조가 자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노텍은 에코매니지먼트코리아(EMK)의 자회사로, EMK는 JP모건이 폐기물업체 6곳을 계열화해 만든 곳이다. 현재 EMK의 지분을 싱가포르 케펠 인프라스트럭처 트러스트(KIT)에서 보유 중이다.
폐기물 처리업이 안정적인 수익으로 글로벌 자본의 투자처가 된 반면, 비용 절감 논리 속에 노사 협상은 뒷전으로 밀리고 책임 주체도 불분명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윤태영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비노텍지회장은 “고강도 노동에 걸맞은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했을 뿐인데, 대표이사가 연락을 피하면서 사실상 교섭은 멈췄다”며 “직장폐쇄는 노조를 압박하려는 수단일 뿐,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한편, 이와 관련 비노텍 측 입장을 듣고자 했으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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