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도시재생사업에 10월 이전
단순 상담소 아닌 역사 증언 공간
연대·치유 지속해온 상징적 장소
옛 성병보건소 건물만은 보존돼야
지금이야말로 논의·실천 필요한 때
두레방(My Sister’s Place)은 1986년 미국 여성 문혜림 선생에 의해 시작됐다. 그녀가 주목한 이는 미군과 결혼했거나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하며 살아가던 여성들이었다.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받던 이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겠다는 다짐으로, 문 선생은 미국장로교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전국연합회의 지원을 받아 두레방을 세웠다.
‘두레방’이라는 이름은 ‘서로 도우며 함께 일하는 공동체’라는 ‘두레’의 의미에서 비롯됐다. 여성들이 모여 쉬고 이야기하며 자존감을 회복하는 공간, 그것이 두레방이 꿈꾸던 자리였다. 설립 초기부터 두레방은 상담, 교육, 자활 프로그램, 치유 활동 등을 통해 여성들의 일상을 지탱해왔다. 동시에 기지촌 성매매 문제와 군사주의의 폐해를 사회에 알리고 책임을 묻는 활동도 지속해왔다. 관련 조례 제정, 국가 손해배상 소송, 특별법 제정, 국제 연대 등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다.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 이후 두레방은 성매매피해상담소로 지정되어 피해 여성들을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기지촌으로 유입된 이주여성들을 위한 ‘두레방쉼터’를 열었고 2021년에는 평택여성인권센터 ‘품’을 설립하며 반성매매 활동을 전국적으로 확장해나갔다.
하지만 지금 기지촌 여성들은 대부분 70~80대의 고령으로 주거난, 의료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에는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 불렸지만, 지금은 쪽방에서 홀로 빈곤과 질병에 맞서며 살아가는 처지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이들의 존재를 불편한 역사로 취급하며 외면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두레방이 터전을 잃게 된 현실이다. 두레방이 사용하는 건물은 1979년 준공된 의정부시 소유의 옛 성병보건소다. 과거 기지촌 여성들이 주 2회 강제로 성병 검진을 받던 아픈 역사의 장소지만, 두레방은 2000년부터 이곳을 평화교육과 인권운동의 장으로 바꾸어 20여 년간 지켜왔다. 이곳은 단지 건물이 아니라 기억을 복원하고 삶의 존엄을 되찾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의정부시는 도시재생사업을 이유로 건물을 철거하고 커뮤니티센터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상담소로 기능하려면 도심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고령의 기지촌여성들은 분노했고 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공간의 의미를 호소했다. 시장은 “1년 유예 후 논의하자”고 답했으나 2025년 6월 시는 임대 연장을 거부했고 결국 10월 두레방의 이전은 확정됐다.
두레방은 단순한 상담소가 아니다. 여성 인권의 역사를 증언하는 공간이며 억압과 침묵 속에서도 연대와 치유를 지속해온 상징적 장소다. 사무실이 이전하더라도 옛 성병보건소 건물만큼은 반드시 보존돼야 한다. 그것은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고 후대에 전하는 기억의 터전이자, 여전히 공동체가 숨 쉴 수 있는 자리다.
최근 경기도가 ‘기지촌여성 인권 기록 아카이브 구축사업’을 추진하며 기지촌 여성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 사업은 단순한 자료 수집이 아니라, 여성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역사화하는 과정이다. 지금이야말로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실천이 필요한 때다.
두레방이 걸어온 길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이면을 말해준다. 침묵과 망각으로 가려진 기지촌의 역사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누군가의 고통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두레방의 이야기는 결코 멈출 수 없다. 그것은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라 사회적·역사적·지역적 의미를 지닌 살아 있는 역사다. 두레방은 앞으로도 여성 인권과 존엄을 증언하는 공간으로, 그리고 기억을 이어가는 공동체로 남아야 한다.
기억은 머무는 곳이 있어야 생명력을 갖는다. 역사의 공간이 사라지면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목소리도 함께 사라진다. 두레방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묻고, 내일의 방향을 제시하는 살아 있는 질문이다.
우리는 이제 그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다시 쓰여질 것이다.
/김은진 두레방 원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