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편을… 우리 아이를 “좀 봐주세요”
카메룬 국적의 안산 미등록 외국인 여성
비용 덜 드는 가정어린이집에 막내 맡겨
0~2세 영아 중심 운영되는 시설
7세 다 된 아이는 숫자 세기도 서툴러
비싼 어린이집·유치원은 ‘언감생심’
지난 2023년, 이계녀 안산 화정어린이집 원장은 카메룬 국적의 미등록 외국인 여성 A씨의 안내로 반지하로 내려갔다. 그곳은 부엌과 방 한 칸이 전부인 좁은 공간이었다. 그 안에는 A씨와 중고등학생 자녀 2명,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쌍둥이 막내 2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A씨가 새벽 일터로 나가는 날이면, 막내들을 그나마 비용이 저렴한 가정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가정어린이집은 0~2세 영아 중심으로 운영돼, 7세가 다 된 막내들은 이곳에서 단지 시간을 때우는 수준이었다. 숫자 세기나 한국어 사용도 여전히 서툴렀다.
초등학교 입학을 1년가량 앞두고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었지만, 아이 엄마는 “아이가 4명이나 돼 돈을 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이 원장은 아이당 월 15만원만 받고 어린이집에 받아들였다. 7세반 담임교사를 따로 붙여 개별 지도하듯 한글을 가르쳤고, 아이들은 지난해 무사히 인근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 원장은 “보육료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미등록 외국인 부모들은 아이를 집에 방치하거나, 나이가 맞지 않는 기관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비자가 없어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주거 환경도 열악해 보육기관에서 제공되는 음식과 돌봄이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3년부터 한국 국적과 주민등록번호를 가진 아동에겐 보육료를 전액 지원하고 있다. ‘2025년도 보육사업 안내’에 따르면 정부는 만 3~5세 아동에게 월 28만원, 만 0세 아동에게는 최대 54만원의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각 어린이집은 추가 비용을 받아 특별활동비, 현장학습 등을 실시한다.
그러나 미취학 미등록 이주아동들에겐 먼 이야기이다. 지원 대상에 속하지 못한 미취학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보육료 부담 때문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지 못하고 방치될 위험에 놓여 있다.
경기도와 일부 시군, 보육료 일부 지원
미등록 이주아동은 대상에서 제외
집에 방치되거나 적절한 돌봄받지 못해
‘미등록 아동 발굴·지원 조례’ 도의회 통과
교육 혜택 제공할 법적 근거 ‘희소식’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아동의 경우, 경기도와 도내 일부 시·군이 자체 재원을 활용해 보육료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경기도는 외국인 아동에게 월 10만 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현재 15만 원으로 인상을 추진 중이다. 화성·부천·안산·시흥 등 10개 시군에서는 아동의 연령에 따라 월 5만 원에서 보육료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일선 보육 현장에서는 외국인 및 미등록 이주아동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광주의 한 어린이집 교사는 “원생 90여 명 중 20명 이상이 외국인 또는 다문화 가정 출신이다. 특히 시내보다 외곽에 위치한 어린이집일수록 외국인 아동의 비율이 더 높다”고 말했다. 또 “현재 7개국에서 온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데, 아직 한국어가 서툰 아이들이 많아 소통 문제로 고민이 크다”고 덧붙였다.
관건은 이들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 대체로 외국인 보육료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는 것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미등록 이주아동도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에 다닐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정은 다르다. 한국 국적 아동은 전액, 외국인 아동은 일부를 지원받지만 미등록 이주아동은 보육료 전액을 자부담해야 한다. 이에 많은 미취학 미등록 아동들이 집에 방치되거나 적절한 교육과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24일 찾은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의 화정어린이집도 정원 95명 중 80% 이상이 다문화 가정 출신이다.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다세대 주택이 밀집해 외국인 거주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원장은 “가정 방문을 해보면 아이들이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걸 확인하게 된다. 결국 보육료를 일부만 받거나 일정 기간은 아예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실제 2년 6개월째 어린이집을 다니는 파키스탄 국적의 한 아동은 올 3월부터 매월 20만 원만 내고 있다. 그전에는 전혀 내지 못했다. 해당 어린이집 원장은 “아이 아버지가 이번 달 수입을 설명하거나 월급 통장을 보여주며 보육료 납부가 어렵다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며 “체류자격을 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범칙금을 낼 돈이 없어서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일을 못 하고, 일자리가 없으니 다시 아이를 맡길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토로했다.
어린이집 입장에서도 모든 미등록 아동에 무료로 보육을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원장은 “보육료 100만 원 이상이 밀린 뒤 말도 없이 퇴소하고, 이후 일자리를 찾아 떠난 다른 지역에서 전화를 걸어 퇴소 처리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며 “일을 하려면 아이를 맡겨야 하니 돈을 받지 못한 채 퇴원 처리를 해주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악순환이 반복되자 경기도가 최근 관련 조례를 제정하는 등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19일 ‘경기도 출생 미등록 아동 발굴 및 지원 조례’가 경기도의회에서 의결된 게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도내 미등록 이주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보육료 지원의 제도적 근거가 마련됐다.
장경임 경기도어린이집협회장은 “한국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당연하지만 외국인, 특히 미등록 아동의 경우 (보육료 때문에) 어린이집에 못 오면 갈 곳이 없으니 그냥 집에서 방치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그래서 어린이집에서 자체적으로 그런 친구들을 위해 특별활동비를 면제해 주거나 사정을 봐주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어린이집 운영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보육료 지원을 통해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교육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은수·이영지기자 wood@kyeongin.com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