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에 간다든지 하면 소주에 해삼을 시키고는 한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이라는 말에 이끌려서다. 이생진 시인의 그 유명한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 실린 ‘고독’이란 작품. ‘나는 떼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배에서 내리자마자/방파제에 앉아/술을 마셨다/해삼 한 토막에/소주 두 잔/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1929년생 시인이 ‘고독’을 읊은 건 1978년. 내가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을 알게 된 건 그 10년쯤 뒤인 대학 입학 후였다. 그 뒤로 나는 포장마차에만 가면 해삼에 소주를 마셨다.

우리에게 ‘섬 시인’으로 잘 알려진 이생진은 제주도 성산포만을 노래한 건 아니다. 그는 만년에 인천 영종도 옆 작은 섬 실미도를 무척 좋아했다. 그는 말했다. 실미도만큼 나를 아프게 한 섬이 없다고. 그 아픔을 모르고 지냈어야 하는데 하며 냉가슴을 앓는다고. 실미도는 바위 그대로, 진달래꽃 그대로, 굴껍데기 그대로, 징검다리 그대로 놔둬야 하는데 하며 해마다 그 아픔을 달래기 위해 술 한 병 들고 가, 실미도에 한 잔 붓고 내 가슴에 한 잔 붓는다고.

이생진은 2011년 ‘실미도, 꿩 우는 소리’란 시집을 냈다. 여기에 ‘실미도’ 연작시 19편이 실렸다. 이생진은 2003년 개봉한 영화 ‘실미도’를 보고 나서 실미도를 찾았다. 그 ‘실미도’ 연작은 실미도 장병들을 위한 진혼곡이기도 했다. 인천시립박물관장을 지내기도 한 우문국(1917~1998) 화백이 마침 1971년 8월 23일 실미도 장병들이 탈취한 버스에 타고 있었는데, 그는 당시 상황을 ‘실미도 난동자와의 동승기’라는 글로 남겼다. 경인일보가 2006년 우 화백의 눈에 비친 실미도 사건을 단독 보도한 적이 있다. 우 화백은 교전 상황도 자세히 그렸는데, 그의 글과 영화를 겹쳐 보면 훨씬 더 질감 넘치고, 장병들의 인간적 모습도 더 진하게 다가온다.

이생진은 ‘실미도’ 시집을 낼 즈음 실미도를 자주 찾고는 했다. 그는 실미도와 그 옆에 붙어 있는 무의도에서 듣는 기계소리가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 자연 그대로의 실미도를 희망했다. ‘실미도의 시인’이기도 한 이생진 선생이 며칠 전 타계했다. 얼굴 한 번 마주한 적 없는 그와 그가 그렇게 아파한 실미도를 위해 소주 한 잔 올린다.

/정진오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