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권한행사, 절차의 정당성 문제 제기
사법개혁, 보편적 공감 토대 위에 이뤄져야
이권 의혹 세력 철저하고 엄한 처벌 따라야
삼권분립은 대통령제가 작동되는 근간이다. 입법·행정·사법의 3부가 상호 견제와 감시의 바탕 위에서 특정 부서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여기서 선출권력과 임명권력의 차이가 존재한다.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주권자의 선택에 의해 구성된 대의기구에 의해 주권자의 뜻이 대표된다는 의미에서 선출권력이 임명권력을 구성한다는 말은 맞다. 그런데 임명권력 구성도 국민의 대의기구와 주권자의 헌법적 결단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선출권력과 임명권력의 과도한 구분이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지난 3월 법원의 윤석열 전 대통령 석방과 5월 대법원의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에 대한 유죄 취지 파기 환송, 이후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구속영장 기각 등 일련의 사법행위는 법원에 대한 불신을 낳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가 대법원장 사퇴 요구와 맞물리는 것은 별개의 차원이다. 더구나 극단 성향의 유튜버가 제기한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그대로 옮겨서 이를 사실로 가정하고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했던 더불어민주당 일각의 요구는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 결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속한 민주당 강성 의원들에 의해 당 지도부와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로 귀결되었다. 대법원장이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으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앞서 서술한 일련의 법원의 행태가 아니더라도 사법개혁의 필요성은 법원도 인정하고 있다.
개혁은 다중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과 보편적 공감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개혁의 대상을 악마화하거나 적대시하는 관점이 내재되어 있다면 그 개혁은 공감을 얻기 어렵고 제도적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 될 수도 있다. 사법부의 개혁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공감을 얻어왔다. 그러나 대법원장을 청문회에 불러내야만 제도적 개혁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법부의 개혁 대의와 동력을 지속해서 유지하고 합리적 개혁안을 도출하기 위해서 여당 일각의 사법부 압박은 지나치다.
조 대법원장 역시 성찰과 자제가 필요하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22일 “세종대왕은 법을 왕권강화와 통치 수단이 아니라 백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규범적 토대로 삼았다”고 했다. 듣기에 따라 사법개혁을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굳이 이러한 발언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실제 내란재판의 결과가 지난 3월의 윤 전 대통령 석방 때 등장했던 ‘해괴한 논리’와 유사한 초현실적 논리가 동원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나온 게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논의다. 이러한 불신을 해소할 노력을 법원 스스로가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할 때 개혁 추진 세력과 각을 세우는 것으로 비치는 언술은 집권세력과 법원간의 갈등으로 비치는 면을 심화시킬 수 있다. 이미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대법관 증원안’에 대해 “사법부가 경청하고 자성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도 있지 않은가.
사법개혁과 관련한 작금의 일련의 상황들에서 다시 되돌아봐야 할 명제가 있다. 권력의 자제다. 권력이 절제되지 않고 무리하게 비치는 권한행사를 통하여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면 그 대의가 선하다 하더라도 절차의 정당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중도적 국민이 공유하는 방식과 상식의 통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방식은 얼마든지 있다. 정쟁적 요소가 개입되는 것을 완전히 불식할 수는 없지만 이는 최소화되고 절제되어야 마땅하다. 당 지도부도 모른 채 대법원장 청문회가 결정됐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공감을 갖기 어렵다.
본질은 내란재판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김건희씨의 국기문란과 국정농단의 의혹들이 연이어 노출되는 마당에 사법부의 행태가 국민 일반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사법부는 맹성해야 한다. 국민이 부여한 국가권력을 이권과 치부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려 한 의혹을 받고 있는 세력에 대한 철저하고 엄한 처벌이 따르지 않으면 사법개혁이라는 온건한 차원을 넘는 국민적 요구가 있을 수 있음을 여당과 야당, 사법부가 명심해야 한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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