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천년의 비밀’ 은행나무만 알텐데…

 

야트막한 산자락 따라 동네 형성

세조·태조의 무덤 이장 ‘전설로’

개성 환도후 옮겼다는 이야기도

강화 불은면 능내촌(능촌)의 천 년 은행나무. 2025.9.29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강화 불은면 능내촌(능촌)의 천 년 은행나무. 2025.9.29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불은초등학교 앞길을 따라 염하 방면으로 가다 보면 ‘고능리’라는 동네가 있다. 그 고능2리에 능내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능내촌’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도 있다. 야트막한 산자락을 따라 동네가 형성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능내촌을 능촌이라고도 한다.

2016년에 펴낸 ‘불은면지(佛恩面誌)’에 따르면 고능리(高陵里)는 원래 고잔동(高盞洞), 능촌동(陵村洞), 곶내동(串內洞)의 세 마을이 따로 있었는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고잔동과 능촌동에서 한 글자씩 따서 고능리라고 했다.

그렇다면 능촌동의 ‘능(陵)’이라는 글자는 어떤 연유로 붙은 것일까. 1937년 이 동네에서 태어난 구예서 할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고려시대 왕릉이 있었다고 믿고 있다. ‘불은면지’에도 그렇게 실려 있다.

‘수령이 천 년 이상으로 강화지역의 노거수 가운데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진 고능리 은행나무 뒤편에 고려시대 왕릉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 안에 자리한 마을이라서 능내촌 또는 능촌이라고도 한다.’

지난 9월29일 오후 수령 천 년이 넘었다는 이 은행나무를 찾아 나섰다. 나무는 아직 진한 녹색으로 뒤덮여 다른 나무들과 섞여서 잘 눈에 띄지 않았다. 노랗게 물들었다면 천 년의 자태가 그대로 드러났을 터였다. 은행나무 바로 옆집에서 흰색 와이셔츠 차림의 신사를 만났다. 인천 시내에 사는 이 집 아들인데 잠시 들른 거라고 했다. 여든여덟 어머님 혼자서 사시는데 마침 읍내 미용실에 가셨다고 했다. 이 집은 14대째 내려온다고 했다. 은행나무 뒤편에는 옛날 자은사(慈恩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 절터가 3단으로 돼 있는데, 어릴 적에는 그곳이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고 했다. 절터 뒤편으로는 능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 자은사가 불은면의 이름 바탕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 천 년의 은행나무는 강화군에서 1982년 보호수로 지정했는데, 안내판에는 높이가 20m, 둘레가 7.4m라고 돼 있다. 수령은 990년. 천 년에서 딱 10년이 부족하다. 그토록 세밀하게 10년 단위까지 적은 내력은 알 수 없지만, 그 나이는 지정할 당시 기준이 아닐까 싶다.

능내촌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석. 2025.9.29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능내촌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석. 2025.9.29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이 능촌에 있었다는 고려시대 능이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할 때 이장한 고려 태조 왕건과 그 아버지 왕륭의 무덤이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고려사절요’에 나타나는 두 번의 기록으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276년 9월의 ‘다시 세조의 재궁을 창릉에, 태조의 재궁을 현릉에 이장하였다. 일찍이 천도할 때에 두 재궁을 강화로 옮겨 장사지냈는데, 이때에 와서 모두 옛 능으로 회복한 것이다’라는 기록과 1243년 8월의 ‘세조·태조를 강화 개골동(蓋骨洞)으로 이장하였다’는 기록.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것은 1232년이고, 다시 개성으로 환도한 것은 1270년이다. 위에 적은 두 가지 기록을 토대로 하면, 1232년 천도 당시(일찍이 천도할 때에·初, 遷都) 세조와 태조의 능을 불은면 능촌에 옮겼다가 11년이 지난 뒤인 1243년에 이를 선원면 대문고개 서쪽에 있었다고 하는 개골동으로 이장했으며, 개성으로 환도한 뒤에 다시 옮겼다는 이야기가 된다. 천도 당시 세조와 태조의 능을 이장한 것은 몽골군의 약탈을 막고 강화도로 옮긴 왕실의 정통성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능촌의 자은사는 고려 세조와 태조의 두 능을 돌보는 용도로 지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 일을 능촌의 천 년 은행나무는 모두 지켜보았을 텐데 말이 없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