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 1세대’ 세상 떠나며 한산
생존자들 “제발 가족 생사확인만”
“이제는 이곳에 오시는 실향민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한가위를 코앞에 둔 1일 오후,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지석리 망향대는 썰렁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명절을 앞두고 고향 땅 이북을 생각하는 실향민 1세대들의 발걸음이 잦았으나 그분들이 자꾸 돌아가시면서 한산해진 거였다.
망향대에서 8년째 간이 카페를 운영한다는 안병순(62)씨는 “이곳에 실향민들이 많이 찾아오셨는데 세월이 갈수록 실향민들이 돌아가셔서 지금은 이곳에 오는 방문객 중 실향민은 적고 관광객이 많다”고 했다.
1988년 망향대에 망배제단 등을 설치하면서 비용을 부담한 실향민 150명의 이름을 적은 기념비도 세웠는데, 그들 중 생존해 있는 경우는 단 2명뿐이라고 안씨는 덧붙였다.
망향대 바로 앞을 흐르는 조강(祖江) 너머가 바로 연백평야다. 실향민들은 명절이 되면 이곳에서 고향의 조상들을 생각하며 차례를 지내고는 했다.
이곳 교동 지역은 특히 연백 출신 실향민들이 많이 살았다. 전쟁이 금방 끝날 줄 알고 고향에 돌아가기 가까운 교동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 세월이 벌써 70년을 넘었다.
교동 지역 실향민 숫자도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150명을 넘던 실향민 1세대가 이제는 30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교동 실향민동우회를 이끌고 있는 서경헌 회장은 1945년생이다. 그는 가족과 함께 일곱 살에 피란을 나왔다. 휴전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교동과 연백은 왕래가 가능했다고 서 회장은 설명했다. 빈손으로 나오다시피 한 피란민들의 생활은 힘겨웠다. 그때 서 회장의 할머니와 누이가 연백에 먹을거리를 가지러 갔다가 그만 휴전이 되는 바람에 영영 못 나오고 말았다. 서 회장은 그동안 3번이나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는데,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서경헌 회장은 “한 번만이라도 누님을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지난해 7~12월(6개월간) 국내외 이산가족찾기 신청자 3만6천17명을 대상으로 벌인 ‘제4차 남북 이산가족 실태조사’ 결과 80대 이상 고령자가 63.6%였다. 신청자들이 가장 바라는 건 ‘북한 가족의 생사 확인’이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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