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살인사건 등 취재 선두 ‘프라이드’

1991년 4월 4일 낮 12시 30분 쯤 수원지방법원 기자실에 전화가 걸려왔다. “네, 박두홉니다”라고 수화기를 들자 “박형이야?”라고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화성경찰서 한 파출소장이다. 이 소장이 나에게 전화를 한 건 지금 화성경찰서 관내에서 뭔가 사건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나는 그러나 “뭐 있어?”라고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꾹 참고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라고 한 템포 늦췄다. 우리 사이는 사건 제보나 해주는 사이가 아니라 일상적인 안부 전화를 주고받는 가까운 사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전화는 그러나 그보다 다급했다. “뭐하고 있어. 난리가 났는데.” 또 다른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왜? 사건이야?”아까부터 묻고 싶은 말이었다.

“동탄지서로 가봐.” “동탄? 여자가 죽었어?” “그래, 부국장도 벌써 다녀갔어.”

그 소장은 경기지방경찰청 부국장이 다녀갔다는 말로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부국장은 지금 차장이다. 여자가 죽었다는 피살현장에 부국장이 다녀갔다는 말은 그만큼 비중이 큰 사건이라는 말이고 그 말은 곧 지난 5년 동안 악몽처럼 이어지는 화성 연쇄여인피살사건이 또 발생했다는 의미다.

화성경찰서 동탄지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수원지검 강력부장, 강력전담 검사, 경기도경 강력과장 등 검찰과 경찰의 강력사건을 담당하는 ‘강력한 멤버’들이 모두 앉아 있었다. “역시 빨라”, “하여튼…”하며 듣기 싫지 않은 인사로 나를 맞았다. 아직 다른 언론은 모르고 있다. 간부들이 앉아 있고 한쪽 책상에서는 익숙한 화성사건 수사본부 요원이 사건발생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나는 그 보고서를 같이 읽었다. 현장에 일찍 도착하는 기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동탄면 이 노파 사건으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사실상 종료됐다. 화성사건이 발생하면 전국의 언론이 태안지서로 모인다. 이들 회사 운전기사들이 경인일보 가판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 경인일보 배송실로 모인다. 그 신문은 현장에 나온 취재기자에게 전달되고 내일 그들 신문의 소스가 된다. 경인일보는 모든 사건 취재에서 한 번도 선두를 놓친 적이 없다. 경인일보의 프라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