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흔적을 기억·기록하는 일 힘이 더 든다

지역언론은 어려운 환경속에서 그 역할 해와

더 많이 더 넓게 발굴·기록해 나아갈일 남아

거기에 보태 스스로 흔적 만들어보길 권한다

원용진 경기민언련 공동대표 서강대 명예교수
원용진 경기민언련 공동대표 서강대 명예교수

창간 80주년을 맞은 <경인일보> 지면엔 6개의 신문 제호가 숨겨져 있다. 1945년 이래 이름을 바꿔가며 경기, 인천 지역에서 지역민과 함께 버텨온 흔적을 담고 있다. <대중일보> <경기매일신문> <인천신문> <경기일보> <연합신문> <경기신문> 그리고 <경인일보>, 그 흔적은 지역언론이 지역에서 살아남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민들이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지역 언론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징표다.

<경인일보> 80주년을 맞아 그의 그림자처럼 보이기도 한 흔적에 주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오랫동안 우리는 흔적을 본체에 끌려다니는 존재라며 낮춰 대접해왔다. 본체 없이 흔적 없다는 말에 더 익숙해 있다. 하지만 현대 철학은 흔적에 더 주목하는 ‘흔적 철학’에 이르렀고 흔적 없는 본체를 유령으로 못 박았다. 본체 없이는 흔적 없고, 흔적 없이는 본체 없다며 둘을 한 몸이라 규정하기 시작했다. 긴 세월 전국 단위 언론이라는 본체의 빛남에 가려졌던 지역 언론이 남긴 흔적에 일일이 명명하고 박수치는 일이 과거에 비해 조금은 수월해졌다.

■ 80년의 흔적

소위 전국구 중앙언론은 구멍이 숭숭 뚫린 세상사를 전하는데 익숙하다. 마치 국가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양 매일 전국구 소식을 전한다. 하지만 그 전국적 사안이 지역에는 어떤 약발로 먹히고 있는지엔 침묵하기 일쑤다. 구체적 체감 소식에는 입을 닫곤 한다. 지역 언론은 그 전국구 소식이 스쳐 지나간 흔적 현장에 더 열을 쏟아왔다. 전국적인 일이 곧 로컬의 삶이기도 함을 전하는데 분주했다. 지역 언론이 챙겨온 로컬의 흔적은 전국구의 몸체와 견주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민주주의가 광화문, 여의도 근처에서만 실천되는 것처럼 말하는 이가 많다. 그런 말은 시민 대중에 결례를 범하는 일이다. 서울 바깥의 수많은 동네도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마을 재생도 논의하고, 지자체를 성토하기도 하고, 지역 현안에 직접 팔을 걷어붙이기도 했다. 로컬 민주주의 실천은 광화문, 여의도 민주주의 실천의 바탕이며 시발점이다. 그 로컬 민주주의 논의에서 지역 언론을 빼놓을 수는 없다. 국가 전체의 민주주의조차도 지역언론에 큰 빚을 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머리에 담고 가슴에 새겨 두어야 할 기억, 역사는 서울에만 있진 않다. 서울의 흔적 인양 서러운 취급을 받아왔던 지역의 역사, 기억이야말로 시민 대중의 진정성을 담은 그릇일 수 있다. 그 어떤 기억과 역사도 대한민국을 단독으로 대표할 수 없다. 다양한 삶이 한반도에 있기에 주변부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국가적 사명에 견줄만한 일이다. 로컬의 흔적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몸체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힘이 든다. 쉽게 보이지 않으며 그를 다루는 방법도 지체된 탓이다. 지역 언론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 역할을 해왔다. 흔적을 기억해 기록하는 것을 넘어 흔적을 찾아나서 다양한 로컬의 삶이 역사 안에 공존하도록 기여해 왔다.

남의 눈 없이는 제대로 내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인간이다. 그런 한계의 극복을 위해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살아간다. 남이 없는 세상살이는 불가능함을 깨달으며 살아간다. 그런 조건을 알고서도 우리는 특정 이웃만을 가려서 만나는데 더 익숙했다. 온갖 미디어를 통해 서울 사는 이웃이 표준 이웃인 양 대해 왔다. 그런 비뚤어진 이웃 만들기 과정에 지역 언론은 수정을 가하며 유능한 해독제 역할을 해왔다. 가까이 사는 지역의 이웃을 끌고 와 서로 말 나누기를 권유했다. 같이 마주한 문제를 연대하며 풀어가기를 제안하였다. 흔적의 이웃으로만 남을 뻔한 이웃을 추스르며 격려했다. 서로 마주보며 함께 하는 운명 공동체로 살게 도왔다.

현대적 삶 안에서 지역 정체성이 존재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지역 정체성 생성을 위해서는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현안을 나누고 있다는 상상의 근거가 필요하다. 동네란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이다. 전국적인 단위에서 상상의 공동체로 시민을 호출하기란 어렵지 않다. 태극기와 애국가를 앞에 두고 ‘대한민국’ 함성만 같이 질러도 하나 된 듯 느낀다. 하지만 지역 정체성을 불러올 상상의 수단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지역 정체성 형성은 그만큼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다. 어려운 조건 내에서 그나마 지역 언론이 우리 동네, 우리 상권, 우리 이웃, 우리 특산물, 우리 민요를 반복해 소리높여 왔다. 지역 정체성의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대기업과 한국은행, 수출시장을 언급해야 곧 시장과 경제를 풀이하는 것으로 호도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란 말은 원래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뜻한다. 일상 안에 담긴 중소기업, 자영업, 개인 장바구니, 가계부, 개인의 호주머니가 경제의 본뜻에 더 가깝다. 어느 틈엔가 개인 살림살이는 경제의 흔적이 되고 말았다. 논의 무대에서 먼발치로 밀려나 있다. 그나마 지역 언론이 일상적 살림살이, 즉 사람 사는 꼴을 챙겨왔다. 스스로 지역의 경제 지킴이를 자처하며 골목 경기를 가늠하는 등 주민의 살림살이를 챙겨왔다. 살림살이에 따르는 민원에도 귀를 기울였고 지방정부, 중앙정부와 연결 경제 창구가 되기도 했다.

■ 흔적을 새로 만들며 미래로 나아가길

어찌 긍정적 평가만 받았을까. 80여 년을 평가한 성적표 안에는 부정적 담론도 만만찮게 들어있을 게 뻔하다. 부정적인 면에 눈을 감고 칭찬만 쏟아내고자 시작한 평가는 아니다.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자며 지역 언론에 권유할 셈으로 작성한 소망리스트이기도 하다.

지역 언론이 다룬 흔적의 영역을 놓고 그 가치를 따져 논의할 필요는 없다. 흔적에 관심 가져서 얻을 가치의 정당성은 충분히 확인되었다. 흔적에 관심을 두어 얻은 결실도 충분히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다. 이젠 더 많이 더 넓게 로컬의 흔적을 발굴하고 기록해나갈 일만 남았다. 거기에 보태어 스스로 흔적을 만들어 보기를 권한다. 시민이 오가며 길을 낸 흔적을 찾고 기록하는 일은 지역 언론의 당연한 의무다. 그 당연한 의무 너머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길 권한다. 새롭게 흔적을 만들어 본체라며 거들먹거리는 쪽을 흔드는 데까지 나아가라며 감히 요청한다. ‘흔적 철학’의 수장 격인 자크 데리다의 입을 빌려 격하게 응원한다. 지역 언론은 “언제나 이미 있으며 언제든 본체에 시비를 걸어야 하는 존재다.”

/원용진 경기민언련 공동대표 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