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사랑하는 ‘안양 제8경’

언덕위 넓은 잔디광장과 인공폭포

일제시대 채석장 아픈 역사 간직

캠핑장은 예약 어려워 인기 실감

병목안시민공원 잔디광장은 넓은 잔디마당 주변으로 나무그늘과 벤치, 파고라 등이 잘 배치되어 단체행사나 가족 나들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병목안시민공원 잔디광장은 넓은 잔디마당 주변으로 나무그늘과 벤치, 파고라 등이 잘 배치되어 단체행사나 가족 나들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안양역 앞 안양1번가와 중앙시장의 시끌벅적함은 삼덕공원을 지나면서 차츰 뒤쪽으로 사라진다. 수암천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달리면 곧 수리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안양의 서남쪽 끝 안양9동에 닿는다. 수암천 양쪽은 오래된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들이 골목길과 어우러진 전형적인 도시 변두리의 모습이다. 안양9동 행정복지센터를 지나 만나는 갈림길에서 커다란 안내판을 보고 왼쪽길로 들어서면 곧 병목안시민공원 공영주차장에 닿는다. 나들이객들이 편하게 주차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170면의 넓은 주차장이다.

‘병목안’은 병의 입구처럼 좁은 지형을 지나면 안쪽에 넓은 땅이 펼쳐진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수리산 자락 아래 한적한 마을은 이제 시민공원과 캠핑장을 품은 안양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수리산 산행길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맛집들이 손님들을 반기는 곳으로 변모했다.

병목안시민공원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이곳에서는 공원의 넓은 광장과 놀이시설들이 보이지 않는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병목안시민공원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이곳에서는 공원의 넓은 광장과 놀이시설들이 보이지 않는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 시민들이 사랑하는 휴식공간

병목안시민공원은 수암천을 따라 길게 이어진 ‘병목안로’의 중간쯤에 자리해 있다. 안양시민들에게 ‘안양의 대표적인 휴식공간’을 물으면 ‘안양예술공원’과 함께 가장 많이 꼽히는 지역 명소다. 역시나 안양9경 중 제8경에 들어있다.

병목안시민공원은 총 면적이 10만1천여 ㎡에 달하는 꽤 큰 공원이다. 하지만 처음 찾은 사람들은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 어리둥절 하기 쉽다. 눈씻고 봐도 낮은 야산 하나 눈에 보일뿐 시원하게 넓은 공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안양 병목안시민공원의 명물로 꼽히는 인공폭포. 여름에는 높이 65m의 인공절벽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룬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안양 병목안시민공원의 명물로 꼽히는 인공폭포. 여름에는 높이 65m의 인공절벽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룬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공원의 진면목은 공원 입구 표지석을 지나 언덕을 올라야 볼 수 있다. 넓은 잔디광장과 중앙광장, 아찔한 높이를 자랑하는 인공폭포, 어린이 놀이시설과 체력단련장 등은 부끄러운 듯 언덕 위에 숨어있다. 계단이나 산책로를 조금만 오르면 탁 트인 시원한 모습이 곧바로 펼쳐지는데, 그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커다란 나무들로 둘러싸인 넓은 잔디광장은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에게 천국같은 곳이다. 차 걱정, 넘어져 다칠 걱정 없이 아이들이 마을껏 뛰어노는 동안 나무그늘이나 정자 아래 자리를 깔고 앉은 어른들도 모처럼 자연속 휴식을 즐긴다.

■ 아픈 역사를 딛고 부활하다

평일에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아이들이 단체로 나들이를 나오고 주말에는 가족들이 줄지어 찾아오는 병목안시민공원은 사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넓은 광장과 커다란 절벽은 자연적인 지형이 아니라 수십년간 채석장에서 돌을 캐내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안양 병목안시민공원 어린이 놀이시설 옆에는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철도 건설 등을 위해 돌을 깨어 나르던 채석장 철로 시설과 궤도차량 일부가 전시되어 아픈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안양 병목안시민공원 어린이 놀이시설 옆에는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철도 건설 등을 위해 돌을 깨어 나르던 채석장 철로 시설과 궤도차량 일부가 전시되어 아픈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고 대륙 침략에 나선 일본은 군수물자 등의 수송을 위해 1930년대에 경부선 철도 복선화와 수인선 철도 조성에 나섰는데 철로에 깔 자갈을 확보하기 위해 이곳 채석장에서 대규모 채석이 이뤄졌다. 수리산 자락 수려한 땅이 침략과 수탈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 셈인데 이 땅에 남겨진 상처뿐 아니라 당시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가혹한 작업에 동원됐을지 짐작만 해도 가슴이 저릿해진다. 그런 역사를 잊지말자는 의미일까. 어린이 놀이시설 옆에는 옛날 캐낸 돌들을 철로로 나르던 철로와 궤도차 일부를 남겨놓았다.

일제의 침략과 수탈을 위해 시작된 채석은 광복을 지나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광복 이후에는 도시 건설 등을 위한 골재를 공급하는 역할이 맡겨졌다. 이후 채석이 중단되면서 이곳은 황폐화되고 버려진 폐채석장으로 수십년을 보내야 했다.

안양 병목안시민공원 잔디광장으로 오르는 언덕에는 사계절 꽃이 피어나는 계단식 사계절정원이 조성돼 있다. 보랏빛 가을꽃이 핀 사계절정원 아래에는 황토 맨발걷기 체험길도 만들어져 시민들이 즐겨찾는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안양 병목안시민공원 잔디광장으로 오르는 언덕에는 사계절 꽃이 피어나는 계단식 사계절정원이 조성돼 있다. 보랏빛 가을꽃이 핀 사계절정원 아래에는 황토 맨발걷기 체험길도 만들어져 시민들이 즐겨찾는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깨어진 바위와 돌덩이들이 위험하게 방치됐던 채석장이 새롭게 변신한 것은 20여 년이 더 지나고 2000년대 들어서다. 2004년부터 이곳을 시민공원으로 새롭게 조성하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2년여의 공사 끝에 2006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돌을 캐어내던 절개지는 높이 65m의 절벽 꼭대기에서 시원하게 물이 쏟아지는 인공폭포가 되었다. 비록 폭포의 바위들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폭포 주변에서 옛 채석장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미끄러지고 매달리고 뛰어오르는 갖가지 시설들로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안양 병목안시민공원 모험놀이터.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미끄러지고 매달리고 뛰어오르는 갖가지 시설들로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안양 병목안시민공원 모험놀이터.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깨어진 돌들이 가득했던 넓은 땅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잔디광장과 수십개의 파라솔·벤치, 놀이시설과 운동시설들이 놓여진 광장이 되었다. 잔디광장으로 오르는 언덕 비탈에는 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계단식 사계절정원이 만들어졌고 그 아래에는 맨발걷기 체험길을 조성해 시민들이 아기자기한 재미와 건강을 모두 챙길 수 있도록 했다.

병목안시민공원은 이렇게 아픈 역사와 폐허의 상처를 딛고 시민들의 손으로 다시 태어난 ‘특별한’ 곳이다. 그만큼 소중하고 각별한 곳이어서 시민들이 ‘사랑하는 휴식처’로 손꼽는데 주저함이 없는 듯 하다.

■ 캠핑장과 수리산 성지

병목안시민공원 한쪽에는 안양도시공사가 운영하는 ‘병목안캠핑장’이 자리해 있다. 안양시의 유일한 공공캠핑장인 만큼 인기가 많아서 주말이나 휴일에 예약하기 어려운 곳으로 유명하다.

나무그늘 아래 데크들이 설치된 병목안캠핑장은 인기가 많아서 주말에 예약이 쉽지 않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나무그늘 아래 데크들이 설치된 병목안캠핑장은 인기가 많아서 주말에 예약이 쉽지 않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캠핑장은 입구 오른쪽 계곡 건너편의 제1캠핑장, 조금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오른쪽의 제2캠핑장과 왼쪽의 제3캠핑장으로 나뉜다. 총 50개의 사이트 중 16개는 글램핑을 즐길 수 있도록 고정식 텐트가 설치돼 있고 나머지는 적당한 크기의 데크로 구성돼 있다. 숲과 계곡을 끼고 깔끔한 편의시설들까지 갖춘 전형적인 휴양림형 캠핑장인데 사이트 간격이 좁은 것이 조금 아쉽다. 간격을 넓히면 그만큼 사이트 숫자가 줄어들게 되니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배치라고 이해하면 마음이 편해질 듯하다.

안양 병목안캠핑장 제1캠핑장 옆에는 시원한 계곡이 흘러 여름 더위를 식혀주고 청량한 물소리로 캠핑객들에게 자연속 즐거움을 선사한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안양 병목안캠핑장 제1캠핑장 옆에는 시원한 계곡이 흘러 여름 더위를 식혀주고 청량한 물소리로 캠핑객들에게 자연속 즐거움을 선사한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병목안시민공원과 캠핑장은 수리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해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수리산쪽으로 산책이나 산행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캠핑장 옆을 지나는 길을 따라가면 맛집으로 이름난 식당들도 여럿 자리해 있다.

식당들을 살펴보며 조금 더 길을 오르면 또 하나의 명소를 만난다. 성지순례자들이 즐겨 찾는 천주교 수리산 성지다. 병목안의 끝자락인 이곳은 우리나라 두번째 천주교 신부가 된 최양업의 부친인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이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과 1830년대에 교우촌을 만들어 거주한 곳이다. 순교한 최경환 성인의 묘를 비롯해 순례자성당, 고택성당, 십자가의 길, 성모동굴, 마리아의 집 등을 만날 수 있는데 병목안에 새겨진 또다른 아픈 역사에 고개가 숙여진다.

천주교 수리산 성지 고택성당. 이곳은 최경환 성인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과 1830년대에 교우촌을 만들어 거주했던 곳으로 현재는 성지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천주교 수리산 성지 고택성당. 이곳은 최경환 성인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과 1830년대에 교우촌을 만들어 거주했던 곳으로 현재는 성지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25.10.2.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수리산 성지 고택성당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서면 본격적으로 수리산에 들어서는 호젓하고 좁은 길이다.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안양예술공원이 잘 차려진 한정식 같은 느낌이라면 수리산으로 이어지는 병목안길은 소박한 시골밥상 느낌이다. 오가는 차량도 별도 없는 한적한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도시 생활을 하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선선한 가을바람에 훌훌 날아가는 듯하다.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