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국감 법사위 의사진행에 갇혀

분노·공포에 사로잡힌 침팬지 무리 같아

잠시 머물 이들, 미래 정치생태계 파괴중

윤인수 주필
윤인수 주필

이재명 정부에 대한 첫 국정감사가 13일 법제사법위원회의 난장판으로 개봉했다. 법사위는 추미애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조희대 대법원장을 일반증인으로 채택했다. 대법원이 대선 전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혐의에 대해 신속하게 유죄취지 파기환송을 한 이유를 대법원장 입으로 국민 앞에 자복하라는 요구였다. 대법원장은 인사말에서 ‘삼권분립 법치국가의 법관의 재판사항은 감사나 청문의 증언대에 세울 수 없다’는 취지로 불출석 사유서 제출 이유를 설명했다. 관례대로 개의 후 이석할 생각이었다.

이날만 별렀던 추 위원장이 놓아주지 않았다. 증인에서 참고인으로 출석 신분을 변경하고 곧바로 의원 질의를 속개했다. 여야 의원들의 분노에 가득찬 의사진행발언과 질의가 뒤엉켰다. 여당 의석에선 “윤석열을 만났느냐, 한덕수를 만났느냐”며 대법원 파기환송을 내란과 대선에 연루시켰다. 야당 의원들은 “이재명 피고인”, “범죄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상황”이라 맞섰다. 대법원의 이 대통령 유죄취지 파기환송을 비난하는 민주당 앞에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받은 대통령을 소환한 것이다.

추석 연휴에 제인 구달을 만났다. 지난 1일 구달이 별세하자 넷플릭스가 사후(死後) 공개를 전제로 제작했던 인터뷰 영상이다. 침팬지 연구로 일가를 이룬 구달은 침팬지의 생태로 인간사회를 통찰했다. 알파(우두머리) 침팬지의 두 유형을 예로 들었다. 오로지 공격성으로 리드하는 알파 침팬지는 힘세고 싸움을 많이 해서 오래 가지 못하고, 두뇌를 사용하는 알파는 훨씬 오래 자리를 지킨단다. 앞서 머스크가 선장인 우주선에 트럼프, 푸틴, 시진핑, 네타냐후를 태워 “(다른) 행성으로 보내버리고 싶다”고 밝혔다. 세계 정치와 경제의 패권주의자들을 공격적인 알파 침팬지에 빗댔다. 경멸의 감정을 우주 추방이라는 유머에 담아,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패권주의자들의 지배를 경고했다.

법사위 의사진행에 갇힌 대법원장을 보며 제인 구달 인터뷰가 떠올랐다. 구달의 표현대로면 법사위의 여야는 낯선 무리를 만나면 분노와 공포에 사로잡혀 털이 곤두서는 침팬지 무리들과 같았다. 분노한 여야 사이에서 대법원장이 모욕당했다. 대통령이 피고인과 범죄자로 호명됐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날 법사위 국감을 “사법개혁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은 법사위 질의에서 “대한민국 사법부가 무너지는 장면”이라고 했다. 맞다. 여야의 정치 영토 전쟁으로 대한민국 사법부는 ‘분수령’이든 ‘무너지는 장면’이든 87개헌 이후 유지해온 권위를 잃을 결정적 순간에 직면했다. 1시간 40분 법사위 퍼포먼스가 만들어낸 마법 같은 재앙이다. 대통령은 덤으로 유죄의 낙인이 찍혔다. 전쟁의 승패는 묘연한데 여야와 대법원장과 대통령의 유혈만 낭자하다.

쉽사리 끝날 전쟁이 아니다. 침팬지 무리의 원시적인 영역 전쟁처럼 한국 정당의 정권 쟁탈전도 본능적이고 맹목적으로 변했다. 법사위 여야 의원들은 수많은 쇼츠 영상으로 각자의 진영에 적대적 분노와 공포를 전염시켜 전선을 확대하고 유지할 것이다. 법관들은 삼권분립의 가호를 의심하기 시작할 테고, 대통령은 통치 영역의 절반을 상실한 채 4년 반 임기를 보낼지 모른다.

“아름다운 지구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하세요.” 제인 구달이 지구인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다. 현재와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파괴되는 지구 생태계를 보호해달라는 호소다. 지구에서 91년 7개월을 머물렀던 유한한 인간이 인류의 생존을 염원하며 남긴 무한한 메시지다. 잠시 머물다 갈 정치인들이 현재와 미래의 아이들이 이어받을 정치생태계를 조각조각 파괴하고 있다. 스스로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는다면 이처럼 부끄러운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구달 처럼 위대한 유언을 남길 정치인이 여야에 한 명 씩만 있어도 희망을 품겠건만, 이미 침팬지 무리와 닮아버린 정치다. 정치에 묻는다. 정말 이대로 이렇게 계속 갈 것인가.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