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 다 가봤다는 자부심
실은 착각… 잘못된 믿음 가져
더 심각한건 ‘나만 옳다’는 생각
타인 인정 ‘겸손의 미덕’ 그리워
검사로 23년 근무하는 동안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각지에서 생활을 해봤습니다. 평검사 시절에는 2년마다 인사 발령을 받았습니다. 부장이 된 후에는 보통은 1년, 짧으면 6개월 만에 이사를 해야 했지요. 조금 과장하면 유랑하는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일 먼저 부산 해운대를 관할하는 검찰청에서 초임 검사 시절을 보냈습니다. 두 번째 근무지는 전북에 있는 조그마한 검찰청이었지요. 세 번째 임지는 경기도에 있는 새로 신설된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주 근무지를 옮기다 보니 영남, 호남, 충청, 강원, 서울, 경기 등 근무해보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손가락으로 세어보니 열다섯 곳을 훌쩍 넘겼지요. 대한민국이라는 비교적 작은 땅에 있는 지역들이지만 저마다의 특색이 있었습니다. 풍광도 다르고 기후도 달랐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달랐지요. 격정적인 분위기의 도시도 있었고, 좀 더 점잖은 분위기의 도시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사귀고 적응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주변을 돌아보는 재미가 제법 컸지요. 그래서 전국의 유명한 곳들은 거의 빠짐 없이 가보게 된 것 같습니다.
지난 여름 휴가철에도 어디를 갈까 고민을 했었습니다. 내심 마음 속에는 전국에 있는 유명한 곳들은 거의 모두 다 가보았다는 자만이 자리잡고 있었지요. 가보지 못한 곳을 지역별로 추리다 보니 전국에 있는 75개의 시와 82개의 군 중 안 가본 곳이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곳들을 가보는 것으로 여름 휴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곳들만 가면 이제 대한민국에서 지역별로 안 가본 곳은 없을 것이라는 만족감도 한몫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한국기행’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산속 오지의 늦가을 풍경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비록 TV로 보는 풍경이었지만,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압도적인 풍광에 넋을 잃고 말았지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곳도 지역으로만 따지면 내가 가본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크게 잘못 되었구나’. 이런 깨달음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유명 관광지 주변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가본 것에 불과했지요. 그런데도 전국을 다 가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부심이 아닌 오만이었던 것입니다. ‘기껏해야 지역의 대표 관광지 몇 군데만 가보고 다 가봤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치면서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소피스트들이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자 소크라테스가 남긴 말입니다. 그 대답을 듣고 소피스트들은 소크라테스의 무지를 비웃었지요.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대들은 그대들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우리들은 흔히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내가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그나마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은 좀 낫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바로 ‘나만이 옳다’ 혹은 ‘나만이 정의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앞서 얘기한 가본 곳이나 아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가보지 않은 곳이나 모르는 것은 비난의 대상은 아니지요. 잘못했다고 크게 꾸짖을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옳다거나 정의라는 문제는 다릅니다. ‘옳다’의 반대말은 ‘그르다’이고, ‘정의’의 반대말은 ‘불의’이기 때문이지요. 즉 상대방에 대한 도덕적 혹은 인격적인 비난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세상 모든 곳을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다 아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지요. 더구나 결정이나 판단의 영역에 이르면 항상 옳기만 하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세상에 만연한 자신감의 과잉을 보면서 더 큰 진실과 타인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겸손의 미덕이 그리워지는 요즈음입니다.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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