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둘이 살던 아들 친구 진우

맛난 자장면 내준 태성루 노부부

어디서든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은 사람에 대한 기억 살아갈 힘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우리 가족은 1990년대 초반부터 줄곧 서울 사당동에서 살고 있다. 교통이 편리해 이곳저곳 출강하던 시간강사 시절의 나에게 안성맞춤이기도 했지만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점이 있었던 것도 좋았던 점 중 하나다.

아파트 초입 삼거리에 태성루라는 중국음식점이 있었는데 칠순이 넘은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구슬이 꿰어진 주렴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가면 테이블 두 개와 온돌이 있었는데 손님이 꽉 차도 열명 정도 간신히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작고 이름 없는 식당이었지만 음식은 정갈했고 특히 자장면이 맛있어서 나는 휴일이면 종종 식구들과 함께 자장면과 짬뽕을 먹으면서 어린 시절의 입맛을 되찾곤 했다.

나의 두 아이는 근처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당시 그 학교에는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오래 전 형성된 산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섞여 있었고 빈부격차가 큰 편이었다. 하루는 아들이 집에 친구를 데리고 왔다. 아들 친구는 산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연령에 비해 체구가 왜소하고 입고 있는 옷이 맞지 않아 아이가 더욱 작아 보였다. 마침 점심시간이 가까웠기에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태성루로 갔다. 두 아이에게 먹고 싶은 걸 물었다. 아들이 자장면을 먹겠다고 먼저 말했고 아들 친구도 같은 걸 먹겠다고 했다. 나는 자장면 세 그릇과 탕수육을 시켰다.

이윽고 음식이 나온 뒤 아들은 자장면을 먹기 시작했지만 아들 친구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젓가락을 집어 종이 포장지를 뜯어냈다. 그제야 아이도 나를 따라 젓가락 포장지를 뜯어냈다. 이어서 내가 고춧가루를 자장면에 뿌리자 아이도 따라 고춧가루를 자장면에 뿌렸다. 내가 자장면을 젓가락으로 뒤섞자 아이도 똑 같이 따라했다. 내가 자장면을 한입 먹고 단무지를 집어 먹자 아이도 따라서 자장면을 먹은 다음 단무지를 먹었다.

뒤에 아이 이름이 진우(가명)라는 걸 알았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진우는 엄마 없이 아빠와 단둘이서 살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언젠가 아침에 등교하던 진우가 콜라 캔을 들고 가는 걸 보고 아침부터 웬 콜라냐고 물었더니 그게 아침이라고 대답하더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 뒤에도 진우는 종종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아들과 함께 어울렸고 자장면을 먹는 데도 익숙해졌지만 또래의 아이들처럼 활발하지는 않았다. 아이답지 않게 먼 산을 바라보거나 표정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아들 방에서 게임을 할 때도 웃으며 떠드는 건 늘 아들이었고 진우 목소리가 들리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를 산책하다 진우를 만났다. 나는 깜짝 놀랐다. 진우가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힘차게 뛰어갔기 때문이다. 아이의 표정은 전에 없이 밝았고 얼핏 보기에도 살이 토실토실 올라 있었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물어본 뒤에야 그 까닭을 알았다. 진우 어머니가 돌아왔던 것이다.

태성루는 이미 오래전에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두 노부부가 건강하시기를 빈다. 진우 가족도 이사 간 지 꽤 오래다. 진우 가족이 어디서든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기원한다.

얼마 전부터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도 재건축이니 리모델링이니 하는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이 아파트도 머잖아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공사가 시작될 테고 우리 가족이 살던 사당동의 시간도 추억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이 순간도 옛 이야기가 될 것이고 보면 추억이란 우리 기억에 남는 순간순간의 침전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침전물이 보석처럼 빛날 때가 있다. 좋은 사람에 대한 기억과 아름다운 이야기는 비록 추억일지라도 지금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당장 떠나는 것도 아니고 몇 년 뒤, 또는 한참 뒤의 일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 아파트를 보는 마음이 벌써 애잔하다.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게 될 동네 사람들의 눈빛이며 시장 상인들의 목소리, 함께 엮거나 스쳤던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어느 가을날, 추억이라는 단어를 붙여보던 지금 사당동의 시간을 추억하는 날도 올 것이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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