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 알 품듯 비봉 기슭 위치
600년 전 한양 설계때 가던곳
김정희·정약용도 오른 ‘명당’
노란 은행잎 지기 전 가보자
삼각산 비봉 기슭에 금선사가 있다. 한양도성 가장 오래된 성문인 창의문 밖 탕춘대성 기차바위에서 바라보면 12시 방향이다. 한양도성과 탕춘대성 그리고 북한산성이 이어지는 곳에 마치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삼각산 금선사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삼각산 아늑한 품에서 백악산과 인왕산을 바라보며 봉황이 알을 품듯 편안한 곳에 금선사가 있다. 삼각산 비봉과 보현봉 능선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수행도량이다. 금선사는 왕이 머물던 공간이었다. 600여 년 전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 그리고 정도전이 한양을 설계할 때 오르던 곳이다.
시간이 흘러 정조가 도성 밖 고요한 곳을 찾았던 곳이 금선사 터 목정굴이다. 삼각산 깊은 산 속 바위와 계곡 사이 커다란 목정굴(木精窟)이 있다. 목정굴은 삼각산 비봉 기슭 바위 속 기도처로 신비한 암자였다. 목정굴 깊은 곳에 수월관세음보살을 모시고 나라의 안녕과 여민락을 기원하던 곳이었다. 목정굴은 바위에 호랑이 형상과 샘이 솟아오르는 기이한 곳이다. 정조가 어린 문효세자와 사랑하는 의빈 성씨를 잃고 슬픔에 잠겼을 때 삼각산 목정굴에서 위안을 찾았다. 정조는 대를 이을 아들도 학수고대하던 곳이다. 이후 정조와 수빈 박씨 사이에 태어난 순조 탄생 이야기가 삼각산 금선사 목정굴에 전해 온다.
비 오는 날 가면 신비로운 풍경을 볼 수 있다. 눈 오는 날은 한 폭의 그림같은 설경으로 바뀐다. 자하문 밖 자하동이 부처님의 신비한 빛깔이듯, 삼각산 금선사 금선은 부처님의 또 다른 금빛 찬란한 모습이다. 수많은 바위 형상을 보며 감탄한 추사 김정희도 이곳에서 독서하며 비봉에 올랐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방여전도(大東方輿全圖)에도 금선사 사찰명이 나온다. 비 오면 금선사 계곡에 많은 물이 쏟아져 목정굴 앞은 거대한 폭포로 변한다. 금선사와 승가사를 오르던 다산 정약용도 굽이굽이 좁은 길 오르며 글을 썼던 곳이다. 삼각산 향로봉과 비봉 사이 길목에 금선사가 있다.
삼각산 금선사는 계곡을 두고 목정굴 위에 만들어졌다. 목정굴 들어가 돌계단에 올라야 금선사 사찰을 볼 수 있다. 일주문 옆 바위에 앉으면 도성 안 경복궁 너머 목멱산까지 보이는 명당이다. 시인 묵계들이 올라와 글감을 담고 시를 읊던 공간이다. 해 저물면 하늘같은 법계에 둥근달을 보며 마음까지 전하는 힐링의 장소다. 범종각에서 울리는 28번의 종소리는 하늘의 별자리 28수 속 나를 찾고 깨닫는 기도성지다. 또한 금선사 신중도(神衆圖)는 하늘을 다스리는 천신과 불법 수호의 신중 무리를 그린 불화로 유명한 곳이다.
삼각산은 경기와 서울의 경계에 있는 명산이자 영산이다. 삼각산 진관사에서 향로봉을 따라 걸으면 천년 고찰 금선사와 목정굴을 만난다. 고려 왕들이 머물며 기도하던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삼각산 승가사와 문수사 옆에 금선사가 있다. 목정굴과 금선사는 낯선 이름일지 모른다. 도성 밖 삼각산 금선사는 도성 안 소식을 전하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또한 문인들과 스님들이 도성 안 소식을 교유하는 문화의 장이었다.
삼각산 금선사는 상강 무렵 가을에 가면 좋다. 꽃 피는 봄에도, 비 오는 여름에도, 단풍이 물드는 가을에도 가면 몸도 마음도 편해진다. 노란 은행잎이 지기 전 삼각산 금선사에 함께 갈까요.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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