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하면 고삐 잡는 ‘말의 고장’… 이성계 명마 ‘사자황’도 여기 출신

 

마필 충당 매음·진강목장 ‘유명’

길가는 사람 말 빼앗은 기록 남아

효종의 북벌의지 담은 ‘벌대총’도

강화군 양도면사무소 앞 벽화에 진강산을 배경으로 뛰노는 말들이 그려져 있다. 2025.10.22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강화군 양도면사무소 앞 벽화에 진강산을 배경으로 뛰노는 말들이 그려져 있다. 2025.10.22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고려시대, 강화는 우리나라 말(馬) 산업의 핵심 공간이었다. 강화는 제주도와 함께 나라에서 필요한 말 수요를 충당하는 중요한 목장지였다. 강화의 그 역할은 수도를 옮긴 강도(江都) 시기에 더욱 두드러졌다. 특별히 삼산면 석모도 매음목장과 양도면 진강산 진강목장이 유명했다.

언제부터였는지 옛말에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라고 했다는데 강도 시기만큼은 사람이나 말이나 태어나면 강화로 보내라고 했을 것만 같다. 그 정도로 강화의 말 목장 비중은 높았다.

요즘 사람들은 강화가 무슨 말의 고장이냐고 하겠지만, 고려의 수도 강화에서는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말을 타고 다녔다. 말을 군 장교나 지체 높은 고관대작들만 타고 다닌 게 아니라 대중교통처럼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는 얘기다.

고려의 통치세력은 강화에서 길 가는 사람들에게서 말을 빼앗기도 하고, 팔기 싫다는 사람을 억압해 말을 팔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그때 그 상황을 ‘고려사절요’에 실린 두 번의 기록으로 되살려 보면, 1259년 여름(4월)에 고려가 화친을 위해 태자를 몽골에 보낼 때 예물을 말 300여 필에 나누어 실었다. 그때 담당 관청의 말이 부족했는지, 길을 지나는 사람의 말을 강제로 사서 충당했다. ‘고려사절요’는 이를, ‘말이 부족하므로 강제로 길 가는 사람의 말을 샀다. 그 때문에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 적어졌다’(以馬不足, 抑買路人馬, 以故乘馬者少)고 썼다.

얼마인지는 몰라도 돈을 주고 억지로 팔게 했는데 그 수가 많아 말 타고 다니는 사람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얘기다. 물론 말 주인은 원하는 가격을 다 받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보상은 했다.

이보다 13년 앞서서는 아예 강제로 빼앗았다. 1246년 가을(7월), (최이가) ‘길 가는 사람의 말을 빼앗아 재목과 기와를 날랐다(奪路人馬, 輸其材瓦)’는 내용도 있다. 최이가 한 관료의 집을 지어주기 위해서였는데, 백성들의 말을 빼앗아 진행한 그 집 짓기를 이틀 만에 마쳤다고 한다.

13년 차이를 두고 기록된 ‘길 가는 사람의 말(路人馬)’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길을 가다가 말을 빼앗길 정도라면 백이 없고, 힘없는 일반 백성이 아니었겠는가. 그렇다면 고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길을 갈 때 말을 탔다고 풀이할 수 있다. 강화에서 만년을 보낸 이규보(1168~1241)는 부잣집에서는 말과 개에게도 쌀밥을 먹인다고 한탄하는 시를 지었는데, 이는 사람들이 집에서 개나 소처럼 말도 키웠다는 얘기이다.

양도면사무소 입구 표지석에 새겨진 벌대총. 2025.10.22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양도면사무소 입구 표지석에 새겨진 벌대총. 2025.10.22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고려시대 강화의 말 전통은 조선으로 이어졌다. 강화는 조선시대까지 말 키우기와 관련해서는 지금의 국가산업단지와 같았다. 그 역할은 여러 기록으로 확인된다. 강화에서는 국가대표급 말도 여럿 나왔다. 고려 말 이성계가 지리산 아래에서 왜적과 싸울 때 탔다는 ‘사자황(獅子黃)’이 삼산 매음목장 출신이다. 이성계가 아낀 여덟 마리의 명마인 팔준마 중 하나다. 또 효종 임금이 타면서 북벌 의지를 불태웠다는 ‘벌대총(伐大총)’은 진강목장에서 자랐다. 벌대총은 큰 나라, 즉 청나라를 치겠다는 의지를 그 이름에서부터 불사르고 있다.

요새도 강화군 양도면 경계 도로와 양도면사무소를 지나다 보면 벌대총의 유명세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양도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쓴 도로변 알림판에, 진강산을 배경으로 뛰놀고 있는 말들을 표현한 면사무소 앞 도로변 벽화에, 면사무소 입구의 말 부조 표지석에 벌대총이 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