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도 어패류 채취 취미로 몰려든 이들 불야성

고립된 사람 구하고 해경 이재석 경사 순직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해루질, 밤에 얕은 바다에서 맨손으로 어패류를 잡는 일을 일컫는 지역 방언이다. 맨손이나 갈고리, 호미 등 가벼운 도구로 어패류를 채취할 수 있어 예로부터 어민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었으나 해양레저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블로그, SNS, 카페, 유튜브 등을 통해 정보 확산이 쉬워지면서 취미활동처럼 쓰이게 된 단어이다.

영흥도와 선재도 사이 좁은 수로에 바닷물이 빠지면 동호인, 지인, 가족 여행객 등 수많은 이들이 불을 켜고 바다로 간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영흥도와 선재도 사이 좁은 수로에 바닷물이 빠지면 동호인, 지인, 가족 여행객 등 수많은 이들이 불을 켜고 바다로 간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영흥도와 선재도 사이의 좁은 수로는 해가 지면 불야성이 된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멀리 송도국제도시와 인천대교를 배경으로 흡사 라이트 쇼가 열린 것처럼 번쩍인다. 삼삼오오 모인 동호인, 친구들, 가족단위 여행객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불빛에 기대어 갯벌을 뒤적인다. 언제부턴가 해루질의 성지가 되었다.

해루질을 하기 위해 영흥도 갯벌을 찾은 방문객들의 불빛이 인천대교를 배경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해루질을 하기 위해 영흥도 갯벌을 찾은 방문객들의 불빛이 인천대교를 배경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대로 괜찮을까? 갯벌 인근 주민들은 해루질 하는 방문객들을 반가워 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양식용 어린 종패를 뿌린 어장이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어 있기 일쑤라 생계에 지장이 생기고 있다.

한때는 야간 해루질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순찰하기도 했지만 주민 고령화와 방문객의 폭발적인 증가, 일부 어촌계원의 경우 해루질 여행객과 다투다가 송사에 휘말리기까지 한 상황이라 사실상 포기 상태이다. 다만 사고없이 조용히 나갔으면 한다는 게 대부분 주민들 뜻이라고 한다.

해루질을 하기 위해 영흥도에 모인 사람들이 바닷물이 빠지길 기다리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해루질을 하기 위해 영흥도에 모인 사람들이 바닷물이 빠지길 기다리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지난달 11일 새벽 느닷없는 소리가 영흥면 일대를 뒤덮었다. 전날 밤 해루질 도중 갯벌에 고립된 노인을 위해 자신이 착용한 부력 조끼를 건넨 해양경찰 이재석 경사를 찾는 헬기와 공기부양정, 해경 순찰선 소리가 영흥도와 선재도 사이의 좁은 수로를 가득 메웠지만 이재석 경사는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영흥면 내리 갯벌에서 발생한 연안사고는 모두 12건으로 사망사고는 2건(18년, 23년)이다. 단순한 기록 수치이지만 사고 확률은 찾아오는 방문객들에 비례한다. 사고는 예기치 않고, 치명적으로, 순식간에 찾아온다. 그때마다 제2, 제3의 이 경사가 생겨야 하겠는가?

불법주차단속 차량이 한밤중에도 단속을 하고 있지만 해루질 방문객들의 불법주차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불법주차단속 차량이 한밤중에도 단속을 하고 있지만 해루질 방문객들의 불법주차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해경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민 의견 등을 수렴해 영흥면 내리 갯벌에 대한 출입통제구역 지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최종 고시가 된다면 해루질 여행객들은 다른 장소를 찾아 영흥을 떠나겠지만, 어디에서나 불빛에 비춰진 물웅덩이는 낙지와 꽃게가 숨어있는 포인트이자 순식간에 턱밑까지 올라올 바닷물이라는 것을 반드시 염두에 뒀으면 한다.

보호장비 없이 해루질을 하는 방문객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보호장비 없이 해루질을 하는 방문객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