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2로 내려갔다가 K리그1 제자리로
강등 충격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프런트
서포터스석 확장한 선견 승리의 원동력
시즌 초반 3R 성남 원정 패배 되레 보약
윤정환 감독 회복탄력성으로 위기 돌파
‘功成而不居’ 큰 공에도 자리 머물지 않기
부천 박현빈처럼 간절한 선수 더많이 필요
내년 상대 부수는 파괴력 한단계 보강해야
책임 있게 분석하고 대처해야 새시즌 설계
출전 기회 많지 않았어도 당당해지길 바라
“세상 풍경 중에서 / 제일 아름다운 풍경 / 모든 것들이 /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포크밴드 ‘시인과 촌장’의 노래 가사 일부다. 제자리는 본래 있던 자리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라는 뜻도 있다. 비상계엄 세상이 올해 제자리로 돌아왔듯이 시민프로축구단 인천유나이티드도 지난 시즌 K리그2로 내려갔다가 올해 K리그1 제자리로 돌아왔다. 대한민국 축구 발상지가 인천이고 축구전용구장의 미학(美學)을 보거나 서포터스 파검의 위용이나 선수단과 프런트의 열정으로 보건대 인천은 K리그1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라고 주장할 자격이 있다.
강등 이듬해 승격을 선언했던 구단주 유정복 시장이 방향을 잡고 축구 살림 경험이 있는 조건도 대표가 충전을 해서 지장(智將) 윤정환 감독이 매듭을 지었다. 배상현 콜리더를 앞세운 서포터스는 K리그1 시절보다 더 막강해졌고 강등의 충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즌 전에 서포터스석을 미리 확장해 두었던 프런트의 선견은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선수들의 기호(嗜好)와 영양을 잘 조절한 주방 영양사 장진선, 전국을 함께 달린 버스기사 이승호, 수석코치 이호와 다섯 명의 전담 코칭스태프, 김정훈 의무팀장과 의무트레이너들, 이상민 팀매니저와 장비담당관, 통역관 오승기 등은 보이지 않는 떨림과 울림이었다.
이처럼 좋은 망치와 든든한 모루가 있는 대장간에서 진검(眞劍)들이 나왔다. 공의 궤적을 볼 줄 아는 인천의 캡틴 이명주,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박승호와 필요할 때 한 방 해주는 박호민은 인천의 쌍박 시대를 열었다. 내 심장은 인천에 있다는 명예시민 골잡이 스테판 무고사, 올 시즌 15경기 799분을 뛰다 김포에서 쓰러질 때까지 상대가 잘하는 것을 못하게 만든 카드캡터 문지환, 제물포 바람잡이 제르소 페르난데스와 치명적인 왼쪽 날개 모두 바로우, 미스터 에브리싱 신진호, K리그 통틀어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한 김건희, 예리한 왼발잡이 풀백 이주용,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전사(戰士) 김명순과 차세대 센터백 박경섭, 차분한 진짜 짠물 민성준 골리, 원더골 제조기 이동률, 달리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한 김성민과 김민석, 더 자주 오래 보고 싶은 김도혁, 충분한 포텐의 소유자 김보섭, 아직도 무럭무럭 자라는 윙어 백민규와 멀티플레이어 최승구, 입대 전날까지 풀타임을 뛰고 간 ‘언성히어로’ 민경현, 윤정환식 빌드업과 클리어링에 차차 녹아들고 있는 김동헌과 델브리지, 번득이며 급한 불을 꺼준 백업 정원진, 강윤구, 김건웅, 이상기.
돌이켜 보면 긴 여정 속에서 돌출된 여러 위기를 윤정환 감독 특유의 연패가 없는 회복탄력성으로 돌파했다. 시즌 초반 3R 성남 원정 패배는 보약이었다. 우리 팀이 2부로 떨어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막상 자신들이 K리그2 선수가 되어 있다는 것은 모르고 뛰다가 진 경기였다. K리그1보다 간절함이 두 배나 큰 K리그2의 쓴 탕약 맛을 일찍 본 것이다. 6월 말 18R 김포 원정 무승부와 7월 초 19R 전남 원정 패배로 추격하는 수원삼성과의 승점 차가 좁혀지던 위기를 21R 경남원정에서 극복하며 고비를 넘겼다. 23R 서울E랜드와 졸전으로 무승부를 거둔 후 24R 부산 원정에서 박승호·박호민 쌍박을 선발로 투입해 승리한 것이 회복탄력성의 대표적 증거들이다. 이겨야 할 팀들에게 브레이크가 걸리고 장기간 톱 독(top dog)에서 오는 피로감과 방심이 드러난 3라운드 로빈에서는 혹시 큰 고비가 다시 오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했었다.
이제는 다시 차분하게 K리그2의 포식자였던 인천유나이티드가 내년 시즌 K리그1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몇 가지 다짐할 시간이다.
우선 지금부터 인천유나이티드 최고의 적은 승리의 기억이다. 노자 도덕경에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라는 말이 있다. 큰 공을 이뤘더라도 그 자리에 머물지 말라는 뜻이다. K리그2 승리의 추억에 갇히면 K리그1의 벽을 넘어설 수 없다. 히말라야 등정에 성공한 사람이 성취의 기억 때문에 으스대다 동네 뒷산에서 넘어져 다치는 것과 같다. 어느 상대든 쉽게 이길 수 있었던 강자의 기억들을 지워 버려야 한다.
둘째, K리그2의 늪에서 배운 간절함을 K리그1로 그대로 이식해야 한다. 올 시즌 K리그에서 저렇게 뛰다가는 죽겠구나라고 걱정되던 선수를 나보고 꼽으라면 온몸이 간절함의 세포로 만들어진 부천FC의 박현빈이다. 인천에도 간절함이 내면화된 선수가 더 많이 필요하다. 하위 팀 천안 원정 갈 때마다 간절함이 사라져 세 골씩 얻어맞은 수모를 잊어서는 안 된다. 집단의 운명을 점잖은 다른 말로 우리는 역사라고 한다. 역사는 과거와 미래의 대화다. 따라서 K리그2 시절을 해부하는 것은 K리그1에서 챙겨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명확히 가르는 일이다.
셋째, 내년 시즌 K리그1에서는 팀이 한 단계 파괴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시즌에는 공격과 함께 리그 최소 실점을 기록한 꾸준한 수비가 주효했다면 내년 시즌에는 상대를 부수는 파괴력이 더 보강되어야 한다. 포지션 파괴나 전술의 파괴는 감독의 몫이지만 팬들의 눈으로 보면 전방 압박이 느슨하고 공간패스의 간격이 좁아 상대의 체력 소모가 적고 빌드업의 다양성과 속도가 느려 전체적으로 게임의 승패와 상관없이 템포가 떨어져 보였다. 스스로 겸손하게 우리가 정말 진정한 우승팀이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다. 선수 보강에는 명분과 주제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것을 ‘올라운드 파괴력’이라고 본다.
넷째, 인천유나이티드는 제자리로 돌아와 일단 자기 권리를 찾았다. 그러나 권리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니체는 ‘혁신하지 않으면 파멸한다’고 말한다. 혁신의 기준은 시선의 높이다. 어느 높이의 시선을 갖느냐가 곧 팀의 수준을 결정하는 핵심이다. 승격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인천시의 관심이 느슨해져서는 안 되고 인구 300만명, 한 해 예산 16조원이라는 도시의 위상에 걸맞게 지원해야 한다. 윤정환 감독도 내년 시즌에 제자리를 지켰으면 좋겠다. 또한 팀 성적에 가려져 있던 프런트 조직, 구단 재정, 스폰서 문제 등 내부 다지기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이러한 것들을 책임 있게 분석하고 대처해야 다가올 시즌 설계를 할 수 있다. 낡은 창으로는 비단도 뚫을 수 없다.
끝으로 사랑하는 선수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올 시즌 출전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은 선수들은 의기소침하지 말고 당당해야 한다. 착한 일 많이 하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으면 다음 시즌 기회는 늘 자기 앞에 있다는 것이 진리다. 가끔 경기 후 수훈 선수들의 인터뷰를 보면 열의 아홉은 감독님 이야기부터 한다. 선수가 감독을 존경하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나 감독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그 선수의 성장은 거기까지다. 자기가 자기 축구의 책임자가 된 선수가 많이 모인 팀이 강하다.
시민구단의 존재 근거는 시민의 행복과 삶의 질·양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그 결실은 도시의 정체성, 자부심, 애향심, 결속력으로 나타난다. 가성비를 따져 봐도 인천에서 이 일을 제일 잘하고 있는 기관이 인천유나이티드다. 전쟁은 다시 시작이다.
“노를 저어 바다로 가자 / 핏빛 파도 속을 헤쳐 나가며 / 꿈을 꾸나 깨어 있으나 / 닻을 내릴 수 없다.”(인천유나이티드 응원가 ‘뱃놀이 가자’)
/박영복 前 인천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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