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위’ 발족식… 박흥렬 위원장
미군이 강화도를 침략한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군이 빼앗아 간 ‘수자기(帥字旗)’를 돌려달라는 운동이 강화에서 시작됐다.
29일 오후 4시 강화군 강화읍 ‘문화반딧불’에서 ‘수자기 반환운동 추진위원회 발족식’이 열렸다. 추진위원장은 박흥렬 강화군의원이 맡기로 했다.
수자기는 조선군 진영에 장군(帥)이 머물고 있다는 의미에서 세워 놓던 부대 상징 깃발이다. 미군이 신미양요 때 광성보를 지키던 어재연(1823~1871) 장군의 부대를 몰살시키고 이 깃발을 약탈해 갔다.
인천 앞바다에 머물고 있던 미 해병대는 1871년 음력 4월 23일 초지진을 점령한 뒤 덕진진, 광성진을 차례로 공격했다. 조선군은 무기와 전투 방식에서 미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광성진을 지키던 조선군은 상륙작전에 나선 미 해병대와의 근접전에서 돌을 집어던지는 등 맨주먹으로 싸우다시피했다. 이때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대다수 병사들이 전사했다.
미 해병대는 광성진을 손에 넣은 뒤 강화도 인근 마을로 진입,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고 본진이 머물고 있던 작약도로 돌아갔다. 미군과 조선군과의 교전 기간은 불과 사흘에 그쳤지만 그 피해는 막대했다. 전투가 끝난 뒤 인명 피해 규모를 놓고는 조선과 미군 사이에 서로 차이를 보였다.
조선 조정에서는 아군 전사자를 53명, 부상자를 24명으로 기록한 반면, 미군은 조선군 사망 243명으로 집계했다. 미군은 3명이 죽고 9명이 부상했다고 적었다.
당시 임금 고종이 집이 불타는 바람에 거리를 헤매는 백성들에게 내탕고에서 특별히 1천 냥을 내어 민심을 수습하라고 명령한 것을 보면 민간인 피해도 상당했을 것으로 주청할 수 있다.
이때 미군이 빼앗아 가 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던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는 2007년 10월, 13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장기 임대 방식이었다. 이 수자기가 신미양요 150주년을 맞아 당시 강화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미군은 2024년 수자기를 회수해 간 뒤 전리품이라는 이유로 돌려주지 않고 있다.
수자기 반환운동 추진위 대표를 맡은 박흥렬 강화군의원은 “미군에 의해 약탈당한 수자기 반환 운동이 전국으로 번져 태평양을 건너가는 물결이 돼 강화는 물론 우리 민족적 자존심인 수자기를 꼭 돌려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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