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석, 자신만의 그림 남겨
‘송하독서도’ 꾸밈없는 필치
실제 얼굴 그린듯 생생·비범
본인에 충실하고 싶었던걸까
수업 시간에 제자들이 한고비 넘기면 금방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온다고 하소연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미술사라는 학문에 발을 들인 그들로서는 시대와 작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온갖 자료를 섭렵해야 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한문으로 쓰인 자료가 많아 좌절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한문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한 세대이기에 고전에 대한 낯섦과 두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모르는 단어를 찾고 문장을 나눠보고 뜻을 고민하면서 노력한 끝에 신숙주(1417~1475)의 그림 기록인 ‘화기’(畵記) 강독을 마쳤고, 얼마 전부터 남태응(1687~1740)이 쓴 회화 비평서인 ‘청죽화사’(聽竹畵史)를 함께 읽고 있다.
청죽화사를 읽다 보니 독서와 관련된 이야기가 종종 보인다. 저자가 읽은 책, 친구들에게 빌려준 책, 화가들이 참고했을 법한 책 등 필자의 제자들처럼 여러 자료를 섭렵하느라 고군분투했을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조선시대는 글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책 읽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자세도 다양하다. 대궐 같은 집안에서, 소박한 초가집에서, 정자에서, 앉거나 엎드리거나 몸을 기대어 글자에 몰두한 모습이다.
계절의 배경도 제각각이다. 매화가 피는 봄, 푸르른 신록(新綠)이 우거진 여름, 낙엽 지고 바람이 이는 가을, 흰 눈이 덮인 겨울 장면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그 옛날 독서는 지식의 습득을 넘어 인격 수양의 근본이자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사유의 매개였기에, 그림 속 인물은 긴장감보다 고요함과 여유로움이 있고 때때로 자연을 관조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여기에 송나라 시인 구양수의 ‘추성부’(秋聲賦)처럼 가을 소리를 들으며 책 읽는 모습을 담은 문학작품의 내용을 빌려왔다면 금상첨화다.
그런데 많은 화가들이 추성부에 영감을 받아 그린 것과 달리 조영석(1686~1761)은 ‘송하독서도’를 통해 자신만의 그림을 남겼다. 중국식 복장을 한 인물은 소나무 아래 바위에 기대어 한 손에 책을 펴고 읽고 있다.
주변에는 아무런 장식도, 화려한 풍경도 없다. 꾸밈없는 소박한 필치는 오로지 인물에 집중하도록 도와준다. 그는 오른쪽 끝에 ‘몸이 한가해져 나의 책을 읽는다’(身閒, 讀我書)라고 쓰고 자신이 직접 그렸음을 밝혔다. 내가 나의 책을 읽는다는 말은 송대 학자 주희의 ‘지락재명’(至樂齋銘) 중 ‘평소 마음이 답답했는데 내가 내 책을 읽으니, 병이 낫는 것 같다’는 문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영석은 함안조씨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벼슬에 운이 따르지 않아 지방직을 전전했다. 하지만 덕분에 각계각층의 현실을 접할 수 있었고 이는 그들의 삶을 화폭에 담는 계기가 되었다.
이 그림 역시 상상의 배경과 달리 누군가의 실제 얼굴을 그린 듯한 현실적인 눈매와 표정이 생생하고 비범하다. 혹 주희의 모습을 빌려 관리로서 분주한 생활 속에서도 잠시나마 자신에게 충실하고 싶었던 화가의 바람을 그린 것은 아닐까.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나의 책’이야말로 내면에 집중하도록 도와주는 진정한 친구일 것이다.
추석 연휴 동안 유난히 길었던 장마가 지나고 찬 기운이 느껴지는 가을이 다가오는 근래 몇 주 동안 제자들은 몇 편의 짧은 옛글을 더 읽어냈다. 부디 고비를 이겨낼 때마다 성숙한 자신이 되어 있기를. 그래서 남의 책이 아닌 진정으로 나만의 책을 찾기를.
/황정연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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