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일까지 차(茶) 스튜디오
독립 큐레이터 채은영 기획
김지영·조성연·안유리 3인전
파도, 폐기물, 잿더미로 본 삶과 죽음
빛, 소리, 진동 감각으로 전시장 채워
인천 개항장에 밀려온 ‘암컷들의 바다’
“낯섦 속에서 찾는 현대미술의 즐거움”
인천 중구 개항장거리 내 역사를 품은 건축물 사이로 도발적인 타이포 그래픽이 눈을 사로잡는다. 파도의 포말처럼 보이는 그래픽이 건물 외관을 장식하고 있다. 해가 지고 어둑해질 무렵 고요한 거리를 지나다 전시 제목인 ‘암컷들의 바다’를 보면 흠칫 놀랄 수도 있다.
신포동 차(茶) 스튜디오에서 진행 중인 기획 전시 ‘암컷들의 바다’는 청년 작가도, 중견 작가도 아닌 ‘미드 커리어’ 여성 작가 3명이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와 감각을 담은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지난 30일 오후 5시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장 1층에 들어서면 높이 3m가 넘는 거대한 높이의 작품을 마주한다. 김지영 작가는 파도 이미지 위에 ‘세계의 소리는 과거에 기대어 울린다’는 글자를 배치했다. 사회적 참사와 재난을 보는 작가의 시각이 느껴진다.
근거리에서만 보이는 아크릴 페인팅의 거친 질감은 인간이 살아가며 부딪히는 미시적인 삶의 리듬을 형상화했다. 멀어질수록 문장과 파도의 형상이 보이며 작가의 시선을 인식할 수 있는데, 역동적인 파도의 모습은 소리 없는 메시지의 울림을 크게 만든다.
시선을 옆으로 옮기면 조성연 작가의 프린트 작업이 보인다. 첫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피사체는 하나씩 뜯어봐야 마른 식물, 시멘트 조각, 낡고 찢겨진 포대자루 조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조 작가는 갯벌을 매립해 만들어진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미개발 구역에서 발견한 공사 폐기물과 염생식물이 뒤섞여 자란 모습을 포착해 크기를 확대했다. 바다였던 땅의 오래된 시간을 시각화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 1층에서 작품을 둘러볼 때부터 귓가를 가득 채운 파도 소리와 진동의 출처를 확인할 수 있다. 안유리 작가의 작품 ‘포효하는 잿더미들’이다.
15분45초로 구성된 영상에는 제주4·3과 사할린 동포의 역사적 기록을 내레이션과 공중에서 촬영된 바다의 이미지로 엮어냈다. 바다의 경계를 넘어 대마도와 훗카이도로 수습된 시신의 기록이 내레이션을 통해 흘러나온다. 이는 전쟁과 이념으로 뒤섞인 지난 역사와 망자의 디아스포라 서사를 환기시킨다.
이번 전시는 독립 큐레이터 채은영의 고민과 디테일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전시를 기획한 채은영 큐레이터는 시민들에게 관습에서 벗어난 특별한 전시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고 한다. 전시 운영 시간도 특별하다. 물때에 맞춰 해가 지는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이어진다.
이달 15일부터 시작된 전시는 11월 9일까지 진행된다. 전시 마지막 날 오후 5시에는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클로징 토크’ 프로그램도 예정돼 있다.
채은영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여성 작가들의 파워풀함을 보여주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완성도 있고, 밀도 있는 좋은 전시를 시민들께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전시장이 군더더기 없이 작가들이 갖고 있는 힘으로 가득 차도록 스케일이 큰 작품들을 배치했고요. 시각적 이미지와 소리까지 관객이 통합적인 감각으로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현대미술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전에 경험하지 못해 낯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시를 찾은 시민들이 오롯이 미술 전시의 아름다움과 경험의 즐거움을 느꼈으면 합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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